원장이 쓴 글 건강정보

같은 몸인데 때에 따라 다릅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왜 아플까〉 · 17편 중 4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밤에만 가렵고, 아침에만 뻣뻣하고, 먹고 나면 쓰립니다. 환자분들은 그 '때'를 아주 정확히 짚으십니다. 몸에 시계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밤만 되면 가려워요." "아침에만 뻣뻣해요." "먹고 나면 쓰려요."

환자분들은 '때'를 아주 정확히 짚으십니다. 어디가 아픈지는 흐릿하게 말씀하셔도, 언제 그런지는 또렷하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 '때'를 흘려듣지 않습니다. 같은 몸에서 같은 자리가 시간에 따라 다르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몸에 시계가 하나가 아닙니다

뇌 깊은 곳에 몸 전체의 하루를 잡아 주는 중앙 시계가 있다는 것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시계가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간에도, 지방 조직에도, 장에도 각자의 시계가 돌아갑니다. 정리해 놓은 글을 보면 핵을 가진 세포라면 거의 다 자기 시계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몸은 시계 하나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시계를 맞춰 가며 굴러갑니다.

그래서 같은 자극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받습니다. 혈류도, 체온도, 호르몬도 하루 안에서 오르내리고, 그 위에 얹히는 증상도 함께 오르내립니다.

시계는 무엇으로 맞춰지는가

여기서부터가 본론입니다.

중앙 시계는 빛으로 맞춰집니다. 아침에 밝은 빛을 보면 그 시계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몸속 시계들은 빛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식사 시간도 관여합니다. 다만 빛보다는 약한 신호이고, 사람에서 이걸 잰 자료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를 보겠습니다. 건강한 분들의 식사 시간만 다섯 시간 늦춰 놓고 잠과 빛은 그대로 둔 뒤 몸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 뇌 쪽 시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 멜라토닌도 코르티솔도 그대로였습니다
  • 그런데 혈당의 리듬은 다섯 시간 반 넘게 밀렸습니다
  • 다만 지방 조직의 시계 자체는 한 시간이 채 안 되게 밀렸습니다

읽는 법이 중요합니다. 크게 밀린 것은 시계가 아니라 대사의 리듬입니다. 시계 자체는 조금밖에 안 움직였습니다. 그러니 "밥 때를 옮기면 몸속 시계가 통째로 다시 맞춰진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열 사람을 실험실에 열사흘 두고 본 작은 연구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빛이 붙잡고 있는 것과 식사가 붙잡고 있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시계가 하나뿐이라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해하지 마셔야 할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평소 몸의 시계들은 서로 꽤 촘촘히 맞춰져 있습니다. 사람 마흔여섯 조직을 훑어본 연구도 온몸이 잘 맞물려 돈다고 적었습니다. 따로 노는 것이 기본값이 아닙니다.

그러니 "때를 탄다"는 것은 몸이 흐트러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에 시계가 여럿이고, 저마다 붙잡고 있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때'가 갈래를 나눕니다

같은 증상도 언제 오느냐에 따라 볼 곳이 달라집니다. 이미 적어 둔 이야기들이 사실 다 이 갈래 위에 있습니다.

— 밤이 되면 가려움이 심해지는 데는 피부 쪽의 하루 변동이 걸려 있습니다. (밤이 되면 더 가렵습니다)

— 다친 뒤의 통증도 밤에 더합니다. 낮에 다른 일에 묻혀 있던 신호가 조용해지면 드러나는 몫도 있고, 몸 자체의 하루 변동에 얹히는 몫도 있습니다. (교통사고 후 밤에 통증이 더 심하다면)

식사 — 쓰림이 식후에 오는지 빈속에 오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식후에 쓰린 것과 빈속에 쓰린 것)

아침 — 아무리 깨워도 못 일어나는 아이의 아침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깨워도 아침에 못 일어납니다)

넷이 따로 놀아 보이지만, 몸이 때를 탄다는 점에서는 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언제 아픈지를 묻습니다

검사는 그 순간의 몸을 봅니다. 그런데 증상은 다른 순간에 납니다. (검사는 그때의 몸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 그런지를 먼저 묻습니다. 하루 중 언제인지, 식사와 어떻게 얽히는지, 잠들기 전인지 깨고 나서인지.

그 답이 어디를 봐야 할지를 좁혀 줍니다. 때를 안다는 것은 갈래를 하나 지운다는 뜻입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밤마다 아파서 깨거나, 자세와 무관하게 계속 아프거나, 체중이 줄고 있거나, 열이 함께 난다면 —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진료와 검사가 먼저입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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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