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에 쓰린 것과 빈속에 쓰린 것
짧은 답
속이 쓰리다는 말씀을 들으면 저는 먼저 시각을 묻습니다. 식사 직후에 오는 쓰림과 위가 비었을 때 오는 쓰림은 같은 이름으로 불릴 뿐, 살펴야 할 자리가 다릅니다.
"속이 쓰려요."
이 말씀을 들으면 저는 먼저 한 가지를 묻습니다. 언제 쓰리신가요. 드시고 나서 금방인지, 아니면 위가 비었을 때인지.
같은 낱말로 오시지만, 이 둘은 살펴야 할 자리가 다릅니다.
산이 많아서만 쓰린 것은 아닙니다
위장 안쪽은 원래 산성입니다. 그런데도 평소에 쓰리지 않은 것은, 위벽이 스스로를 덮어 두기 때문입니다. 점액이 한 겹 깔리고, 그 아래로 중탄산이 배어 나와 산을 중화합니다. 얇지만 이 두 겹이 하루 종일 일합니다.
그러니 쓰림은 산이 늘었을 때만 오지 않습니다. 덮개가 얇아져도 옵니다. 같은 농도의 산이라도 덮개가 성한 사람과 얇아진 사람에게 다르게 닿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산을 감지하는 쪽, 즉 점막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쓰리다기보다 울렁거림에 가깝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런 경우는 분비가 과한 쪽보다 감각이 과한 쪽으로 봅니다. 반복해서 자극을 받은 자리는 문턱이 낮아집니다.
시각이 자리를 알려 줍니다
드시고 30분쯤 뒤에 쓰린 경우. 음식이 들어오면 산 분비가 함께 오릅니다. 이 시점에 쓰린 분들은 대개 분비가 올라가는 국면과 점막의 부은 상태가 겹쳐 있습니다.
위가 비었을 때, 그러니까 식후 두어 시간이 지나거나 새벽에 쓰린 경우. 이때는 덜어 줄 음식이 없이 산이 점막에 직접 닿습니다. 저는 이쪽에서 덮개가 얇아진 자리를 더 의심합니다.
먹으나 안 먹으나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앞의 둘이 겹쳐 있다고 봅니다.
시각을 묻는 일이 대단한 검사는 아닙니다. 다만 같은 "쓰림"을 세 갈래로 나누어 주니, 어디부터 손댈지가 달라집니다.
산이 모자라도 탈이 납니다
쓰림이라고 하면 산이 넘치는 그림만 떠올리기 쉬운데, 반대쪽도 있습니다.
위산은 소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것을 걸러 내는 일도 합니다. 산도가 충분히 낮지 않으면 걸러지지 않는 것들이 지나갑니다. 오래된 위장 증상이 이쪽인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쓰리니까 무조건 산을 줄이면 된다"는 그림은 다 맞지 않습니다. 산을 누르는 약은 산이 문제인 자리에서 제 일을 합니다. 다만 덮개 쪽이나 감각 쪽이 문제라면 손대는 자리가 다릅니다. (명치가 답답하고 자주 체하는데 검사는 깨끗하다면)
쓰림을 셋으로 나눕니다
이럴 때 저는 세 가지를 나눠 봅니다. 덮개가 얇은가, 압력이 높은가, 감각이 예민한가.
한약을 쓸 때도 그 셋이 다른 층에 있다고 보고 씁니다. 점액과 중탄산이 나오는 쪽을 거드는 약재가 있고(백출, 감초), 위가 음식을 받을 때 부드럽게 늘어나도록 돕는 약재가 있고(후박, 진피), 예민해진 점막의 신호를 눅이는 쪽으로 읽히는 약재가 있습니다(황금, 반하). 한 가지가 산을 끄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서 조금씩 미는 방식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반대 방향도 함께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생강은 속이 울렁거릴 때 자주 쓰는 약재지만, 점막이 이미 헐어 있고 국소가 산성으로 기울어 있으면 같은 성분이 오히려 화끈거림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서는 단독으로 쓰지 않고, 국소의 산도를 완충해 주는 약재를 함께 씁니다. 같은 약재가 조건에 따라 반대로 작동합니다. 성분표만 외워서는 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럴 때는 검사를 먼저
변이 짜장처럼 검게 나오거나, 삼킬 때 걸리는 느낌이 생기거나, 체중이 줄거나, 토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안을 들여다보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속이 쓰리다는 말은 한 가지 상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각을 묻습니다. 언제 쓰린지가, 어디가 헐거워졌는지를 꽤 자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참고한 자료
- 검사가 정상인데 속이 쓰린 경우, 공복에 하는 내시경에서는 잡히지 않을 때가 많고 위장관 전체의 리듬이 어긋나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 위가 음식을 내보내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위 자체가 예민하게 반응해도 같은 증상이 생긴다 —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