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혈당·체중은 따로 온 손님이 아닙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왜 아플까〉 · 17편 중 16번째
짧은 답
허리둘레가 늘 때 배 속에 끼는 지방은 창고가 아니라 신호를 내보내는 조직입니다. 혈압·혈당·중성지방이 함께 움직이는 이유를 그 신호에서부터 따라가 봅니다.
허리둘레가 늘 때 늘어나는 지방은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손으로 잡히는 피부 밑 지방이고, 다른 하나는 배 속 장기 사이에 끼는 지방입니다. 뒤엣것을 내장지방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지방을 남는 열량을 넣어 두는 창고로 보지 않습니다. 지방산과 여러 신호 물질을 꾸준히 내보내는 조직이니, 하는 일로 치면 기관에 가깝습니다. 몸 한가운데에서 쉬지 않고 신호를 뿌리고 있다면, 그 신호가 닿는 데가 한 군데일 리 없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혈압과 혈당과 체중이 함께 경계에 걸리는 일이 흔한 데에는 이 사정이 있습니다.
세 줄을 잇는 고리
내장지방이 내보내는 신호가 간과 근육에 닿으면, 같은 양의 인슐린으로 예전만큼 혈당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부릅니다. 몸은 모자란 만큼 인슐린을 더 냅니다. 그래서 한동안 혈당은 거의 정상으로 유지됩니다. 대신 인슐린이 평소보다 높게 깔린 채로요.
높게 깔린 인슐린은 혈당만 건드리지 않습니다. 신장이 나트륨을 조금 더 붙잡게 하고, 교감신경 쪽을 조금 더 켭니다. 그만큼 혈압이 오릅니다. 인슐린은 남는 열량을 지방으로 넣어 두는 쪽이기도 해서 체중은 더 늘기 쉬워지고, 늘어난 지방은 다시 처음의 신호를 늘립니다.
하나가 원인이고 나머지가 결과인 그림이 아닙니다. 셋이 서로를 조금씩 밀어 주는 고리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인슐린 하나로 다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잠이 짧아진 것, 근육이 줄어든 것, 오래 켜져 있던 긴장, 활동량이 준 것이 같은 고리에 함께 손을 얹습니다.
그래서 셋이 같은 해에 나빠집니다
이 고리에서 눈여겨볼 것은 순서보다 시간입니다.
세 수치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개 체중이 먼저 조금 늘고, 혈압이 뒤따라 몇 밀리미터 오르고, 혈당은 그보다도 늦게 올라옵니다. 몸이 인슐린을 더 내서 혈당을 오래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혈당이 눈에 띄게 오른 시점은 고리가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버티던 쪽이 밀리기 시작한 시점에 가깝습니다.
한 해 결과지만 보면 이 시간차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 줄이 나란히 경계에 걸린 것으로만 보입니다.
결과지에는 세 줄이 나란히 놓입니다
"셋 다 아슬아슬하긴 한데 약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네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종이를 펴 놓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혈압은 130에 조금 못 미치고, 공복 혈당은 100 언저리이고, 체중은 재작년보다 4킬로그램쯤 늘었습니다. 줄 끝마다 "경계"나 "추적 관찰"이라고 적혀 있고, 빨간 글씨는 한 줄도 없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 표는 항목마다 선을 하나씩 긋고 그 선을 넘었는지만 봅니다. 줄과 줄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는지까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기준선은 병을 가르는 곳이지 건강한 몸이 머무는 곳이 아니니, 셋 다 선 안쪽이면서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것만 보지 않고 작년과 재작년 종이를 함께 펴 놓습니다. 수치 하나가 얼마인지보다 세 줄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묻습니다. 언제부터 허리가 달라졌는지, 그 무렵 잠이 어땠는지, 식사 뒤에 유난히 졸린 때가 있는지. 수치에 안 적히는 것들이 시작 시점을 알려 줄 때가 많습니다.
아직 방향이 바뀌는 대목입니다
이 고리에는 좋은 성질도 하나 있습니다. 서로 밀어 주는 만큼 한 곳만 움직여도 나머지가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잠이 늘면 식욕 신호가 달라지고, 근육이 조금 붙으면 같은 인슐린으로 처리되는 당이 늘고, 그러면 인슐린이 덜 깔립니다. 체중 몇 킬로그램을 목표로 삼는 것보다, 세 줄이 향하는 방향을 돌려놓는 편이 실제로는 더 빨리 옵니다.
제가 한약을 쓸 때 보는 것도 셋 중 어느 수치가 높은가가 아닙니다. 고리의 어느 대목이 먼저 밀렸는지를 보고 그쪽에 손을 댑니다. 잠이 얕아 먼저 밀린 몸과 활동이 줄어 먼저 밀린 몸에 같은 처방을 쓰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다만 최근에 체중이 저절로 빠졌거나, 갈증과 소변이 눈에 띄게 늘었거나, 혈압이 갑자기 높게 잡힌다면 그것은 이 이야기와 다른 문제일 수 있으니 검사를 먼저 받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혈압과 혈당과 체중은 각각 다른 과에서 다루는 수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몸에서는 같은 형편을 세 곳에 적어 놓은 것일 때가 많습니다. 이 고리는 지질 쪽으로도 이어지는데, 그 차례는 뒤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셋 다 경계에 걸린 결과지는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아직 어느 것도 병이 아니고, 세 줄이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지금 읽었다는 뜻입니다.
참고한 자료
- 내장지방에서 유리지방산이 나와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고, 혈압·혈당·지질이 함께 묶인다는 설명 — 국가건강정보포털, 질병관리청
- 내장지방이 내보내는 물질이 혈압을 올리고 인슐린의 일을 방해해 고인슐린혈증으로 이어진다는 설명 — 질환백과 대사 증후군, 서울아산병원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