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건강정보

몸에는 일부러 새는 혈관이 있습니다

〈몸이 스스로를 지키는 법〉 · 8편 중 2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붓거나 진물이 나면 혈관이 터졌거나 약해졌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혈관 벽은 자리마다 촘촘한 정도가 다르고, 같은 혈관도 필요할 때 사이를 벌려 내보냅니다. 붓는 것은 벽이 무너진 결과가 아니라 문을 연 결과에 가깝습니다.

발목을 삐어 부었을 때, 상처에서 맑은 진물이 배어 나올 때, 환자분들은 대개 혈관이 터졌거나 약해졌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훨씬 자주 벌어지는 일은 다릅니다. 몸이 그 자리의 벽을 잠시 열어 둔 것입니다.

혈관 벽은 자리마다 다릅니다

혈관 안쪽은 내피세포가 한 겹으로 덮고 있습니다. 이 세포들이 서로 얼마나 촘촘히 맞물려 있느냐가 자리마다 다릅니다.

  • 의 혈관은 유난히 촘촘합니다. 이음매가 단단히 잠겨 있어 웬만한 것은 못 지나갑니다. 이 벽을 혈뇌장벽이라고 부릅니다.
  • 호르몬을 내보내는 샘, 장 점막, 콩팥의 혈관에는 아예 창이 뚫려 있습니다. 빨리 내보내고 빨리 걸러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 의 혈관은 그보다 더 성깁니다. 큰 분자도 드나듭니다.

벽의 촘촘함은 그 자리가 맡은 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뇌처럼 지켜야 하는 곳은 잠가 두고, 주고받아야 하는 곳은 열어 둡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혈관인 것이 아닙니다.

같은 혈관도 필요할 때 엽니다

여기가 더 중요한 대목입니다. 촘촘한 혈관도 그때그때 사이를 벌립니다.

다치거나 염증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히스타민 같은 신호가 나옵니다. 그 신호를 받은 내피세포는 서로 붙잡고 있던 이음매를 느슨하게 풉니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리로 물과 단백질이 빠져나갑니다. 백혈구도 그 틈으로 조직에 들어갑니다.

부었다는 것은 이 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벽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몸이 열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붓기는 빠졌는데 아직 뻐근합니다)

열지 않으면 고칠 수 없습니다

왜 굳이 열까요. 수리에 필요한 것이 혈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싸울 세포도, 벽을 다시 세울 재료도 피 안에 있습니다. 그것들이 조직으로 나가려면 벽이 열려야 합니다. 문을 닫아만 두면 수리팀이 현장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기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초기의 부기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표시에 가깝습니다.

다만 오래 열려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빠져나간 단백질이 조직에 남으면 물이 따라 남습니다. 부기가 잘 안 빠지고, 그 자리의 환경 자체가 달라집니다. 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때 닫히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닫는 일도 조절입니다

닫는 쪽에도 장치가 있습니다.

하나는 흐름입니다. 피가 벽을 스치며 지나가는 그 힘 자체가 내피세포에게 신호가 됩니다. 흐름이 꾸준하면 벽은 안정된 쪽으로 유지됩니다. 혈관 안쪽 면을 덮은 솜털 같은 층이 그 흐름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혈관 안쪽 면은 흐름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었을 때 가만히만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편이 나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흐름이 생겨야 벽이 다시 조여지고, 나간 것이 림프로 걷힙니다. 물론 다친 직후의 무리한 움직임은 다른 문제이니 구분이 필요합니다.

부기를 볼 때 나누는 것

저는 부기를 볼 때 지금 여는 중인지, 닫혀야 하는데 못 닫고 있는지를 나눠 봅니다.

여는 중이면 서두르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안 빠지거나, 아침에 더 심하거나, 눌렀을 때 자국이 오래 남으면 그때는 닫는 쪽과 걷어 내는 쪽을 함께 봅니다. 같은 부기라도 손볼 자리가 다릅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한쪽 다리만 갑자기 붓고 아프거나, 얼굴과 입술이 급히 부으면서 숨쉬기가 불편하면 진료가 먼저입니다. 양쪽이 함께 붓는 것이 오래간다면 심장·콩팥·간 쪽을 한 번 확인해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붓는다는 일 하나에 이만한 갈래가 있습니다.

한의학은 부기를 무조건 빼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 생겼는지, 눌러 보면 어떤지, 아침저녁 어느 때 심한지를 나누어 보고 그다음을 정했습니다. 같은 부기라도 때에 따라 다르게 다루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럴 만합니다. 여는 일과 닫는 일이 서로 다른 장치이고, 여는 중인 부기와 닫히지 못한 부기는 손볼 자리가 다르니까요.

옛 진찰이 왜 그렇게 잘게 물었는지, 기전을 알고 나면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저는 그 물음을 그대로 씁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이 글이 자기 얘기 같으셨습니까?

진료 시간을 바로 고르시거나, 오시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을 먼저 보내실 수 있습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