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하는 일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스스로를 지키는 법〉 · 8편 중 1번째
짧은 답
다치면 몸이 곧바로 수리에 들어갈 것 같지만, 그 앞에 한 단계가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알아차림은 다 망가진 뒤의 보고만은 아닙니다. 앞서 오기도 하고 뒤따라 오기도 합니다.
어디를 다치면 몸이 곧바로 수리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한 단계가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어디가, 얼마나, 어떤 종류로 잘못됐는지를 먼저 잡아내야 그다음이 시작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이 순서를 자주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의 절반이 몸이 무엇을 알아차렸는지를 읽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이 먼저고, 대응은 그다음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몸은 먼저 그 자리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표시된 자리로 대응이 갑니다. 그 대응의 기본형이 염증이고, 그 이야기는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붓기는 빠졌는데 아직 뻐근합니다)
순서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 알아차림이 흐려지면 대응도 늦습니다. 반대로 알아차림이 지나치게 예민해지면, 별일 아닌 데에도 대응이 붙습니다. 진료에서 제가 양쪽을 다 보는 이유입니다.
알아차림은 다 망가진 뒤의 보고만은 아닙니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입니다.
아픔을 결과 보고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망가졌으니까 아프다고요. 절반은 맞습니다.
그런데 통증을 맡는 신경의 문턱이 어디쯤 잡혀 있는지를 보면, 그것만은 아닙니다. 국제통증학회의 공식 정의부터가 이 신경 — 통각수용기라고 부릅니다 — 을 자극하는 것을 "조직을 손상시키거나 손상을 위협하는" 자극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위협하는이 들어가 있습니다.
열로 재 보면 눈에 보입니다. 사람 피부는 43도를 갓 넘을 때 아프기 시작하고, 화상은 44도쯤에서 시작됩니다. 1도 차이입니다. 아픔이 손상보다 조금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관절에는 평소 잠자코 있다가 조직이 상하고 염증 물질이 나온 뒤에야 깨어나는 감지기도 있습니다. (쑤신다, 아리다, 시리다)
그러니 아픔은 앞서 오기도 하고 뒤따라 오기도 합니다.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 아프다고 안 상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아픔에는 몫이 있습니다
아프니까 그 자리를 덜 쓰게 됩니다. 덜 쓰는 동안 수리가 진행됩니다. 통증을 다룬 한 종설은 이 신경들을 아예 "첫 번째 방어선"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드문 유전 질환에서는, 반복된 손상을 본인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관절과 뼈가 상해 간다는 것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픔을 참으시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아파서 잠을 못 자고 걷지 못하면 회복이 오히려 늦어집니다. 통증을 줄이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고, 저는 그 자리를 깎지 않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감각이 태어날 때부터 없는 경우이지, 아플 때 치료받는 일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신호를 줄이는 일과 나란히, 무엇이 그 신호를 켰는지도 함께 보자는 것. 둘은 같이 갈 수 있고, 저는 뒤쪽을 맡습니다.
그래서 진료의 절반은 읽는 일입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하는 일들이 사실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전부 몸이 무엇을 알아차렸는지 읽는 일입니다.
배에 손을 얹는 것 — 숨을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되미는 힘이 고른지를 봅니다. (배에 손을 얹으면 알 수 있는 것)
발을 보는 것 — 몸이 자기 자세를 알아내는 정보가 거기서 많이 올라옵니다. (허리가 아픈데 발을 봅니다)
표현을 그대로 적는 것 — 쑤신다와 아리다는 서로 다른 장치가 보낸 말입니다. (쑤신다, 아리다, 시리다 — 다 다른 말입니다)
언제 아픈지 묻는 것 — 검사는 그 순간을 보고, 증상은 다른 순간에 납니다. (검사는 그때의 몸을 봅니다)
넷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아차림을 읽는다는 점에서 같은 일입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감각이 무뎌진 자리가 뚜렷하거나, 다쳤는데 아프지 않거나, 힘이 빠지거나, 밤에 아파서 깬다면 —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진료와 검사가 먼저입니다.
참고한 자료
- 사람 피부에서 아픔이 시작되는 온도와 화상이 시작되는 온도를 모아 정리한 문헌고찰 — Burns, 2017
- 통증을 맡는 감각 신경을 몸을 지키는 첫 번째 방어선으로 정리한 종설 — Neuron, 2007
-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반복된 손상이 알아차려지지 않은 채 관절이 상해 간다는 보고 — QJM, 2022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