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건강정보
칼럼 최종 수정

저장된 철분이 먼저 줄고, 혈액 수치는 나중에 내려갑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왜 아플까〉 · 17편 중 7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철분은 저장량이 먼저 줄고 혈액 수치가 나중에 변합니다. 그래서 혈색소가 정상이어도 저장량은 바닥나 있을 수 있습니다. 의학은 그 부분을 보려고 저장량을 따로 재는 검사를 만들었습니다.

"빈혈은 아니라는데 왜 이렇게 어지러울까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께 저는 검사지를 한 번 더 봅니다. 빈혈이 아니라는 말은 대개 혈색소가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체내의 철분은 혈액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철분은 세 군데에 나뉘어 있습니다

체내의 철분은 크게 세 군데에 있습니다. 혈액 속에서 산소를 나르는 몫, 혈액을 타고 이동하는 몫, 그리고 간과 일부 세포에 저장된 몫입니다.

몸은 이 셋을 같은 순서로 쓰지 않습니다. 철분이 부족해지면 저장된 것부터 꺼내 씁니다. 그동안 혈액 속 혈색소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창고에서 꺼내 오는 동안 진열대가 비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저장량이 바닥나고 나서야 이동하는 몫이 줄고, 그다음에야 혈색소가 떨어집니다. 부족은 저장고에서 시작해 혈액에서 끝납니다.

철분이 줄어드는 차례

「빈혈은 아니다」가 「철분이 넉넉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흔히 어긋납니다.

혈색소는 순서상 맨 나중에 내려가는 수치입니다. 그러니 혈색소가 정상이라는 것은 "아직 마지막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뜻이지, "저장량이 넉넉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장량이 줄어드는 동안에도 몸은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빈혈이 아닌데 어지럽고, 유난히 지치고, 잘 때도 다리가 근질거린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럴 때 이 순서를 떠올립니다.

의학은 그 자리를 보려고 검사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여기가 이 이야기에서 제가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의학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혈액을 도는 몫 말고 저장된 몫을 따로 비추는 검사를 만들었습니다. 페리틴입니다. 철분을 저장하는 단백질이고, 그 수치가 저장량을 반영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검사가 몸을 못 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부분을 볼 것인지 정해야 그 부분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혈색소는 혈액을, 페리틴은 저장량을 반영합니다. 둘은 다른 곳을 봅니다.

다만 페리틴에도 사정이 있습니다. 몸에 염증이 있으면 저장량과 상관없이 수치가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수치 하나만 떼어 읽지는 않습니다.

어느 쪽이 줄고 있는가

진료실에서 저는 "빈혈인가 아닌가"보다 어느 쪽이 줄고 있는가를 먼저 봅니다. 저장량이 줄어드는 중인지, 이미 혈액 수치까지 내려왔는지, 아니면 철분과는 다른 문제인지요.

그리고 저장량이 줄어드는 데에는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섭취가 적었는지, 흡수가 덜 되는지, 어디선가 조금씩 나가고 있는지. 저는 그 이유 쪽을 함께 봅니다. 저장량을 채우는 일과, 줄어드는 이유를 없애는 일은 다릅니다.

다만 대변 색이 검거나 혈액이 섞이거나, 월경량이 부쩍 늘었거나, 체중이 까닭 없이 준다면 — 그것은 이 이야기를 넘어선 신호입니다. 원인을 찾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빈혈은 아닙니다"는 정확한 말입니다. 다만 그 말이 비추는 자리는 혈액입니다.

어지러운데 빈혈은 아니라면, 몸이 말하는 것은 진열대가 아니라 저장량 쪽 사정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이 글이 자기 얘기 같으셨습니까?

진료 시간을 바로 고르시거나, 오시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을 먼저 보내실 수 있습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