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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한꺼번에 나이 들지 않습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왜 아플까〉 · 17편 중 12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몸 안의 세포는 자리마다 사는 기간이 다릅니다. 며칠 만에 교체되는 곳이 있고 평생 그대로인 곳이 있습니다. 이 교체 속도(턴오버)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는 한 숫자여도 몸 안에는 여러 시계가 따로 돕니다.

같은 나이인데 어떤 분은 피부가 좋고 어떤 분은 무릎이 좋습니다. 한 사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얼굴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데 관절은 먼저 뻑뻑해지고, 반대인 분도 계십니다.

저는 이것을 사람마다 다른 운이 아니라, 몸 안에 시계가 여럿 있기 때문으로 봅니다.

자리마다 세포가 바뀌는 속도가 다릅니다

몸은 낡은 세포를 버리고 새 세포로 바꿔 가며 유지됩니다. 이렇게 세포가 물러나고 새것이 들어서는 일을 세포 교체, 영어 이름 그대로 턴오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교체 속도가 자리마다 크게 다릅니다.

피와 장의 안쪽 벽처럼 며칠 단위로 교체되는 곳이 있습니다. 피부의 바깥층도 빠른 편입니다. 반대로 거의 교체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뇌의 신경세포나 심장 근육이 그렇습니다. 한번 제자리를 잡으면 더는 둘로 나뉘지 않는 이런 세포를 유사분열 후 세포라고 부릅니다. 21가지 세포를 견주어 본 자료에서 그 폭은 이틀에서 수만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몸 전체로 보면, 세포로 이루어진 몸의 무게가 대략 2년 남짓이면 거의 새것으로 바뀝니다. 다만 그것은 평균이고, 그 안에서 어떤 곳은 이미 여러 번 새로 지어졌고 어떤 곳은 처음 것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몸 안에서 새것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

빨리 바뀌는 곳과 오래 남는 곳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 차이는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빨리 바뀌는 곳은 회복이 빠릅니다. 장의 벽은 상해도 며칠이면 새 세포가 올라옵니다. 대신 교체하는 일 자체에 재료와 힘이 들고, 재료가 모자라거나 교체할 여유가 없으면 표가 빨리 납니다. 잘 못 먹거나 오래 앓은 뒤에 장과 피부부터 나빠지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오래 남는 곳은 반대입니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신 한번 쌓인 것이 오래 남습니다. 교체할 기회가 적으니 세월이 남긴 자국이 그대로 쌓입니다. 신경과 심장, 관절의 물렁뼈가 그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검사로는 이 차이가 안 보입니다

한 번의 검사는 오늘의 값을 잽니다. 아주 정확하게 잽니다. 다만 그 값이 어느 시계에서 온 것인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빠른 시계에서 온 값은 최근 몇 주의 형편을 비추고, 느린 시계에서 온 값은 지난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같은 "정상"이라도 하나는 지금 잘 굴러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여유가 남아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검사지의 숫자가 다 정상인데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나란히 놓입니다.

빠른 자리가 먼저 말해 줍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빨리 바뀌는 자리를 먼저 봅니다. 혀와 입안, 장의 상태, 피부와 손톱, 머리카락. 이곳들은 턴오버가 빠른 만큼 최근의 형편을 먼저 내보입니다. 몸이 재료와 여유가 모자라기 시작하면 여기서 먼저 표가 납니다.

느린 자리는 반대로 읽습니다. 관절이나 신경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최근 몇 주의 일이라기보다 오래 쌓인 시간의 이야기로 봅니다. 그러니 빨리 되돌리려 서두를 일이 아니라, 조건을 바꿔 두고 기다릴 자리입니다. 느리다는 것은 늦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느린 자리는 좋아지는 것도 느리게, 그러나 오래 갑니다.

다만 어느 자리든 변화가 갑자기 오거나, 몇 주 안에 눈에 띄게 나빠지거나, 체중이 까닭 없이 준다면 — 그것은 시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인을 찾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나이를 한 숫자로 셉니다. 그러나 몸 안에서는 여러 시계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돌고 있고, 한 사람 안에서도 어떤 곳은 이미 여러 번 새로 지어졌습니다.

같은 나이인데 어디는 멀쩡하고 어디는 먼저 지친다면, 그것은 몸이 고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리마다 다른 시계가 각자의 시간을 적어 온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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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