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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은 재는 숫자가 아니라 지키는 값입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손발이 찬데 체온은 정상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체온계는 몸이 지켜 낸 결과를 보여 주고, 손발의 온도는 그것을 지키느라 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온도는 효소의 속도와 혈관, 면역 반응까지 함께 건드리는 조건입니다.

"손발이 너무 차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체온을 재 보면 대개 정상입니다. 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닙니다.

이 부조화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체온계는 몸이 지켜 낸 결과를 보여 주고, 손발의 온도는 그것을 지키느라 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봅니다.

몸이 온도를 좁게 지키는 이유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거의 다 효소의 손을 거칩니다. 그리고 효소는 온도를 탑니다. 따뜻하면 빨라지고 서늘하면 느려집니다.

한 가지 반응만 돌린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몸에서는 수천 가지 반응이 서로 맞물려 돌아갑니다. 온도가 흔들리면 그 속도들이 제각각 다른 비율로 달라집니다. 앞 단계는 빨라졌는데 뒷 단계가 못 따라가면 중간 산물이 쌓입니다.

그래서 몸은 온도를 좁게 지킵니다. 여기에 적잖은 비용을 씁니다. 온도가 대사만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혈관이 넓어지고 좁아지는 정도, 면역세포가 움직이는 속도까지 온도를 따라 달라집니다.

지키는 방법은 만드는 쪽과 버리는 쪽입니다

뇌 앞쪽에 온도를 맡은 자리가 있습니다. 피부와 몸속에서 올라온 온도 신호를 받아, 지켜야 할 값과 견주어 보고 지시를 내립니다. 이 값을 설정점이라고 부릅니다.

모자라면 만들라고 합니다. 근육을 잘게 떨어 열을 내고, 갈색지방에서 에너지를 열로 흘려보냅니다. 남으면 버리라고 합니다. 피부 혈관을 넓혀 열을 내보내고, 땀을 냅니다. (땀은 열을 식히려고만 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몸이 우선하는 것은 중심입니다. 심장과 뇌와 내장이 있는 안쪽 온도를 지키는 쪽으로 조절이 짜여 있습니다.

손발이 차다는 것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말입니다

중심을 지키려면 밖으로 나가는 열부터 줄여야 합니다. 그때 몸이 먼저 줄이는 쪽이 피부 혈류이고, 그중에서도 손발입니다. 부피에 견주어 겉넓이가 넓고 바깥 공기에 그대로 닿아 있어 열을 쉽게 뺏기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손발이 차다는 것은 손발이 고장 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이 지금 열을 아끼는 쪽으로 조절을 몰아 놓았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치우침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걸려 있을 때입니다. 추운 데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그쪽으로 가 있다면, 실제로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조절이 그 자세로 굳어 있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몸은 모자랄까 봐 미리 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후자도 드물지 않습니다. (몸은 정확하게 맞추지 않습니다)

세포도 온도를 압니다

온도는 세포 안에서도 일합니다. 단백질은 접힌 모양이 곧 기능인데, 온도가 벗어나면 그 모양이 풀립니다.

그래서 세포에는 풀리려는 단백질을 붙잡아 다시 접어 주는 단백질이 따로 있습니다. 열을 받았을 때 크게 늘어나 열충격단백질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산소가 모자랄 때나 화학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도 늘어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알고 나서 온도를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세포가 온도 하나에 이만한 장치를 따로 갖춰 두었다면, 온도는 몸에서 곁가지가 아니라 바탕에 놓인 조건이라는 뜻이니까요.

열이 나는 것은 설정점을 올린 것입니다

감염이 있을 때 열이 나는 것은 조절이 무너져서가 아닙니다. 지켜야 할 값 자체를 몸이 올려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열이 오르는 동안 오히려 춥고 떨립니다. 새 설정점에 견주면 지금 몸이 차니까 열을 더 만듭니다.

면역 반응의 여러 단계가 온도를 타기 때문에 이 자체는 이유가 있는 반응입니다. 다만 사람마다 견디는 정도가 다르니, 높은 열이 이어지거나 아이가 처지면 그때는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묻는 것들

저는 체온계 숫자보다 몸이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조절하는지를 봅니다.

손발과 배의 온도가 다른지, 아랫배만 유독 찬지, 땀이 어느 때 나는지, 더위와 추위 중 어느 쪽을 더 힘들어하시는지를 묻습니다. 같은 "손발이 차다"는 말이라도 그 뒤의 사정이 다르면 손볼 자리가 달라집니다. (요즘은 여름 나기가 겨울 나기보다 힘듭니다)

몸을 데우는 일도 그렇습니다. 겉을 덥히는 것과 조절의 쏠림을 되돌리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한쪽 손발만 갑자기 차고 색이 변하거나, 감각이 함께 둔해진다면 혈관 문제일 수 있으니 진료가 먼저입니다. 갑상선 기능이나 빈혈로도 추위를 심하게 타므로, 오래되었다면 한 번 확인해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여기까지가 "손발이 차다"는 말 한마디 뒤에 있는 일입니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몸을 볼 때 차고 더운 것을 먼저 물었습니다. 손발이 찬지, 배가 찬지, 어느 쪽을 더 견디기 힘든지를 나누어 적어 두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온도계로 재는 체온이 아니라 몸이 열을 어느 쪽으로 쓰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읽습니다.

지금은 그 질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설정점이 있고, 그 값을 지키려 열을 만들고 버리는 길이 있고, 세포 안에는 온도가 어긋날 때 단백질을 붙잡아 주는 장치까지 있습니다.

예전 의가들이 나눠 둔 자리에 지금 화학과 생리학이 이유를 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공부해 진료실에서 옮겨 적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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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