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난 몸은 조금 다른 몸입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왜 아플까〉 · 17편 중 10번째
짧은 답
식사 뒤에는 배 쪽으로 혈액이 크게 몰립니다. 그동안 몸은 나머지를 조금씩 뒤로 미룹니다. 검사는 대개 공복에 재고, 하루의 상당 시간은 식후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나른해집니다. 어떤 분은 앉은 자리에서 눈이 감기고, 어떤 분은 일어설 때 잠깐 아찔합니다. 저는 이것을 게으름이나 나이 탓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먹고 난 뒤의 몸은 실제로 조금 다른 몸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으면 배 쪽으로 혈액이 몰립니다
음식이 들어오면 소화기관이 일을 시작합니다. 위와 장이 움직이고, 소화액이 나오고, 흡수한 것을 실어 나릅니다. 이 일에는 혈액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몸은 배 쪽으로 혈액을 크게 늘려 보냅니다.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그 늘어나는 폭이 25%에서 200%에 이르고, 몇 시간씩 이어집니다. 하루 세 끼를 드신다면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이 이 상태입니다.
몸에 있는 혈액의 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한쪽으로 크게 보내면, 다른 쪽은 그만큼 조정해야 합니다.
그동안 나머지는 조금씩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 식후에 몸은 여러 가지를 함께 조절합니다. 심장이 조금 더 자주 뛰고, 다른 자리의 혈관이 조여 압력을 지킵니다. 이 조절이 잘 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느낍니다.
그런데 이 조절에 여유가 적으면 표가 납니다. 식후에 유난히 나른하거나, 일어설 때 아찔하거나, 머리가 무거워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한 끼를 크게 드실수록 더 그렇습니다. 몸이 배 쪽으로 크게 보내는 동안 나머지를 받쳐 줄 힘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검사는 대개 공복에 잽니다
여기서 4부의 이야기와 만납니다.
혈액 검사는 대개 공복에 받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건을 맞춰야 어제와 오늘을, 이 사람과 저 사람을 견줄 수 있으니까요. 혈압도 대개 앉아서 안정을 취한 뒤에 잽니다.
다만 그렇게 얻은 수치는 조건을 맞춘 몸의 수치입니다. 그리고 환자분이 불편을 느끼는 시각은 대개 그 조건 밖입니다. 밥을 먹은 뒤, 일하는 중, 저녁 무렵이지요. 그래서 "검사는 다 정상인데 밥만 먹으면 이런다"는 말이 나옵니다. 두 문장은 서로 다른 조건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런지가 실마리입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식사와의 시간 관계를 자주 묻습니다. 먹고 나서 바로인지 한두 시간 뒤인지, 무엇을 먹었을 때 심한지, 양을 줄이면 덜한지요. 같은 나른함이라도 그 시간표가 다르면 볼 곳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손댈 곳도 대개 소박합니다. 한 끼의 양을 줄이고 횟수를 나누는 일, 먹고 바로 눕거나 급히 일어서지 않는 일 같은 것입니다. 몸이 한꺼번에 감당해야 할 몫을 줄여 주는 쪽입니다.
다만 식후에 실제로 정신을 잃은 적이 있거나, 가슴이 조이듯 아프거나, 먹은 뒤 심하게 토한다면 — 그것은 이 이야기와 다릅니다. 확인하는 진료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몸을 하나의 상태로 생각하고 검사도 그렇게 받습니다. 그러나 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조건을 바꿔 가며 지냅니다.
밥만 먹으면 나른하고 어지럽다면, 그것은 예민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몸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 검사는 그때의 몸을 봅니다 — 조건을 맞춘 수치와 생활 속의 몸
- 평균은 그 자리를 모릅니다 — 검사가 몸의 어디를 비추는가
참고한 자료
- 식사 뒤 내장 쪽 혈류는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25
200% 늘고, 37시간 이어진다 — The Gastrointestinal Circulation, Postprandial Hyperemia - 식후 저혈압은 내장으로 몰린 혈액에 대한 심혈관 쪽 보정이 모자랄 때 생긴다 — Potential for Gut Peptide-Based Therapy in Postprandial Hypotension, 2021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