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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벽이 조금 헐거워질 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몸이 바깥과 맞대는 넓이의 대부분은 피부가 아니라 장 안쪽입니다. 그 벽이 조금 헐거워질 때 몸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검사로는 왜 잘 안 잡히는지 정리했습니다.

우리가 몸의 바깥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부입니다. 그런데 몸이 바깥과 맞대고 있는 넓이로 치면 피부는 큰 쪽이 아닙니다. 그 넓이의 대부분은 장 안쪽에 있습니다.

입에서 항문까지는 하나로 이어진 관입니다. 그 관은 몸 안에 들어 있지만, 관 속은 몸 안이 아닙니다. 삼킨 것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 아직 몸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니까요. 받아들이는 일은 그 관의 벽에서 일어납니다.

숨이 드나드는 코와 기관지 안쪽도 그렇고, 피도 혈관의 안쪽 면에 닿아 흐릅니다. 몸에는 이렇게 안과 바깥이 맞닿는 곳이 여러 겹 있고, 그 하나하나에 벽이 서 있습니다.

이 벽은 통째로 막힌 벽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들이고 나머지는 막아야 하니, 문이 촘촘히 달린 벽에 가깝습니다.

세포와 세포 사이를 꿰매 놓은 이음매

벽을 이루는 세포들은 그냥 나란히 붙어 있지 않습니다. 세포와 세포가 맞닿는 위쪽 가장자리를 단백질이 띠처럼 둘러 꿰매 놓았습니다. 이 이음매를 밀착연접이라고 부르고, 꿰매는 실에 해당하는 단백질에 클라우딘오클루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음매 바깥쪽에는 한 겹이 더 있습니다. 미끈한 점액이 덮여 있고, 그 안에 세균이 벽에 달라붙지 못하게 감싸는 항체가 섞여 있습니다. 장 안쪽에서 이 일을 하는 항체를 분비형 IgA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음매는 한 번 지어 놓고 그대로 두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조여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합니다. 오래 켜져 있던 긴장, 짧아진 잠, 지나간 장염, 자주 거르는 끼니가 전부 이 조절에 손을 얹습니다.

크게 뚫리는 일보다 흔한 것

경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어딘가 구멍이 나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 일은 드뭅니다. 실제로 흔한 쪽은 여러 겹이 저마다 조금씩 느슨해지는 일입니다.

점액층이 얇아지고, 이음매가 예전만큼 조여지지 않고, 그 사이로 평소라면 그냥 지나갔을 것들이 조금 더 안쪽까지 닿습니다. 그러면 몸은 그때마다 작은 대응을 합니다. 그 대응이 잦아지면 소화, 피부, 컨디션 같은 서로 멀어 보이는 곳에서 함께 어긋난 티가 납니다.

한 겹만 놓고 보면 어느 쪽도 병이 아닙니다. 여러 겹이 같이 느슨해졌다는 사실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합니다."

위내시경도 깨끗하고 피 검사도 정상인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먹고 나면 자주 더부룩하고, 피부가 별것 아닌 것에 올라오고, 잔 것 같은데도 개운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 병이라고 부를 만큼은 아닙니다.

세 가지를 각각 소화기·피부·피로의 문제로 나누면 셋 다 애매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 그림 위에 얹으면 한 줄로 놓입니다. 벽이 여러 겹이니, 그 겹들이 함께 느슨해지면 표도 여러 곳에서 함께 납니다.

내시경은 점막이 헐었는지, 붉어졌는지, 튀어나온 것이 있는지를 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양을 보도록 만든 검사입니다. 이음매가 얼마나 촘촘한지는 이 검사가 보는 항목이 아닙니다. 피 검사의 염증 수치도 이미 벌어진 일이 일정한 규모가 되어야 올라오니, 조금씩 느슨해진 단계에서는 대개 조용합니다.

물론 체중이 저절로 줄거나, 대변에 피가 비치거나, 열이 함께 나는 경우는 이 이야기와 다릅니다. 그때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제가 확인하는 것들

그래서 저는 어디가 아픈지보다 언제부터 달라졌는지를 먼저 봅니다. 장염을 앓고 난 뒤인지, 일이 몰리던 시기와 겹치는지, 끼니를 거르기 시작한 때와 맞는지. 소화가 편치 않은 것과 피부가 예민해진 것이 같은 계절에 시작되었다면, 그것을 두 가지 일로 나누지 않습니다.

한약을 쓸 때도 무엇을 더 채워 넣는 쪽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경계를 조절하는 조건 쪽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소화가 불편하다는 말씀에도 소화만 보지 않고, 그 무렵의 잠과 긴장을 함께 다룹니다. 경계를 조절하는 손잡이가 거기에도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이음매가 한번 지어 놓고 끝나는 구조물이었다면 느슨해진 데는 그대로 남았을 텐데, 실제로는 조여졌다 풀렸다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느슨해진 상태도 고정된 형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 겹이 함께 느슨해진 몸은 한 겹씩 따로 손보기보다, 그 겹들을 같이 조절하는 쪽이 빠릅니다. 검사지에 적히지 않았다고 해서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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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