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자율신경 클리닉
칼럼 최종 수정

학교에서만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집에서는 멀쩡한데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프고 숨이 답답하다고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몸이 상황을 미리 읽고 준비 태세로 들어간 것이고, 그 태세는 한 군데만 건드리지 않습니다. 배와 숨이 같이 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집에서는 멀쩡해요. 그런데 학교만 가면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을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께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조퇴를 하고 왔는데 집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집니다. 학교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해서 검사를 받아 보면 심장도 폐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물으십니다. 꾀병인가요.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왜 아닌지를 설명해 드립니다.

몸은 일이 벌어진 다음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위험이 닥친 뒤에 대응을 시작하면 늦습니다. 그래서 자율신경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을 미리 읽고 먼저 준비합니다.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발표를 앞두고 손에 땀이 나는 것, 시험지를 받기 전에 배가 싸르르한 것,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에 입이 마르는 것 — 전부 같은 일입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바뀌어 있습니다.

아이가 이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손에 땀이 나는 것을 의지로 멈출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준비 태세는 한 군데만 건드리지 않습니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몸이 준비 태세로 들어갈 때 한 가지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곳이 동시에 조정됩니다.

위는 느려집니다. 지금은 소화에 힘을 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먹은 것이 위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명치가 답답하고 더부룩합니다.

그런데 대장은 반대로 급해집니다. 같은 신호를 받고도 위와 대장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배가 아프면서 화장실이 급해지는 조합이 나옵니다. 초등 고학년 이후로 아이가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는 말씀을 자주 듣는데, 그 자리가 여기입니다.

숨이 얕고 빨라집니다. 긴장하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필요보다 많이 내쉬면 피 속의 이산화탄소가 낮아지고, 이산화탄소가 낮아지면 오히려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어지럽고 머리가 멍하고 손끝이 저립니다. 숨을 더 쉬었는데 더 답답해지는, 앞뒤가 안 맞아 보이는 일이 여기서 생깁니다.

한 아이에게서 배와 숨이 같이 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의 태세가 여러 곳을 함께 움직인 결과입니다.

그래서 장소를 탑니다

집에서 괜찮은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설명이 되는 일입니다.

몸은 아무 데서나 준비 태세를 켜지 않습니다. 그 태세가 필요하다고 읽은 상황에서만 켭니다. 집은 그 상황이 아니고 학교는 그 상황입니다. 그러니 집에 오면 풀립니다.

같은 몸이 장소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은 꾀병의 증거가 아니라, 자율신경이 상황을 읽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이 대목을 꼭 말씀드립니다. 아이가 제일 억울해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또래에 유독 많은 이유

청소년기는 몸의 조절 체계가 한창 다시 맞춰지는 시기입니다. 키가 크고 몸의 부피가 달라지는 동안 혈압과 심박, 소화의 속도를 맞추는 조절도 함께 새로 조정됩니다. 조정 중인 저울은 같은 무게에도 더 크게 흔들립니다.

여기에 잠이 부족하고,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고, 앉아 있는 자세가 굳어지는 조건이 겹칩니다. 흔들리기 쉬운 시기에 흔들릴 조건이 함께 옵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하는 일

마음을 다잡아서 될 일이었으면 아이가 벌써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을 바꾸는 쪽으로 갑니다. 위가 비우는 속도가 처져 있으면 그쪽을 돕고, 장이 급해지는 쪽이 두드러지면 그쪽을 눅입니다. 숨이 얕은 아이는 숨을 깊게 쉬라고 시키기보다 내쉬는 쪽을 길게 하도록 알려 줍니다. 들이쉬는 것을 늘리면 오히려 이산화탄소가 더 낮아집니다.

무엇이 더 크게 흔들리고 있는지는 아이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들고 와도 아이마다 다른 약을 씁니다.

병원 진료가 먼저인 경우

체중이 뚜렷하게 줄거나, 밤에 아파서 깨거나, 대변에 피가 비치거나, 열이 함께 나거나, 배 아픈 자리가 한 곳으로 굳어져 있다면 —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먼저입니다. 숨이 답답한 것이 운동 중에 유독 심해지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은 검사에서 별다른 것이 나오지 않았을 때 그다음을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때 부모님이 가장 힘드신 것은 아프다는 말을 믿어 줘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라고 하십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아이는 실제로 아픕니다. 다만 아픈 자리가 검사로 보이는 자리가 아닐 뿐입니다.

숨이 답답한 쪽이 더 두드러진다면 숨이 안 쉬어지는데 검사는 정상이라면을, 배가 팽팽해지면서 가슴까지 답답해진다면 배가 부르면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린다면을 함께 읽어 보셔도 좋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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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