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건강정보

가을에 마르는 것은 물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계절이 바뀔 때 몸이 하는 일〉 · 6편 중 4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가을에 산불이 잦은 것은 불씨가 세져서가 아니라 탈 것이 말라 있어서입니다. 몸에서 마른다는 것도 물이 모자란 상태가 아니라, 점막으로 가는 피가 줄고 분비물이 끈적해진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물만 많이 마셔서는 잘 풀리지 않습니다.

가을에 산불이 잦은 것은 불씨가 세져서가 아닙니다. 탈 것이 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불씨라도 마른 숲에서는 번지고 젖은 숲에서는 꺼집니다.

몸도 가을에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공기가 건조해지면 피부와 점막이 먼저 마릅니다. 그런데 몸에서 "마른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림과 조금 다릅니다.

진료실에서 듣는 말은 "마른다"가 아닙니다

가을에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 입이 마르는데 침이 끈적하다
  • 아침에 눈곱이 찐득하게 낀다
  • 콧물이 맑은데 끈끈해서 잘 안 나온다
  • 코는 막히는데 콧물은 안 나온다

물이 모자란 상태라면 그냥 양이 줄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겪으시는 것은 양이 줄면서 성질이 바뀌는 쪽입니다. 묽던 것이 찐득해집니다.

이것이 몸에서 일어나는 건조의 실제 모습입니다.

긴장하면 침이 끈적해집니다

침샘은 두 갈래 신경의 지시를 함께 받습니다. 편안할 때 일하는 쪽이 켜지면 묽은 침이 넉넉히 나옵니다. 긴장할 때 일하는 쪽이 켜지면 양은 적고 단백질이 많은 끈적한 침이 나옵니다. 같은 신경이 점막으로 가는 혈관을 좁히기도 합니다.

긴장하면 입이 바짝 마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몸에 물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 분비의 성질이 바뀐 것입니다.

가을에는 이 일이 겹쳐서 일어납니다. 공기가 건조하고, 일교차가 커지면서 몸이 긴장하는 쪽으로 쏠립니다. 바깥에서 마르는데 안에서도 덜 내보냅니다.

같은 자리로 가는 길이 몇 개 더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분비가 줄기도 하고, 열이 나거나 탈수가 있을 때도 그렇고, 지나친 다이어트로 실제 체액이 줄어도 그렇습니다.

점성이 높아진 점액은 쓸려 나가지 않습니다

코와 기관지의 점막에는 잔털이 촘촘히 나 있어 점액을 한 방향으로 밀어냅니다. 먼지와 세균이 그 점액에 붙어 함께 실려 나갑니다. 섬모 청소라고 부르는 일입니다.

이 일은 점액이 알맞게 묽을 때만 됩니다. 점액의 점성이 높아지면 잔털이 밀어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어 버립니다. 실려 나갔어야 할 것이 머무릅니다.

가을에 감기와 비염이 늘어나는 데는 이런 사정이 겹쳐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갑자기 사나워진 것이 아니라, 쓸어내는 일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른 숲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나옵니다.

그래서 물을 많이 마시는 것만으로는 잘 풀리지 않습니다. 마신 물이 곧장 점막 표면의 점액을 묽게 만들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물기는 날아가고 끈끈한 성분만 남으면 오히려 더 엉깁니다. 마시는 물보다 머무는 습도분비 자체가 함께 가야 합니다.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겨냥한 약재가 있었습니다

한의학에는 마른 점막을 겨냥해 오래 써 온 약재들이 있습니다. 인삼을 두고 생진지갈(生津止渴)이라 했습니다. 진액을 만들어 갈증을 멎게 한다는 뜻인데, 지금 말로 옮기면 분비 기능을 개선하고 점막을 윤기 있게 만드는 쪽입니다.

물을 밖에서 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내보내게 하는 방향입니다. 저는 이 구분을 환자분께 말씀드릴 때 물컵과 수도꼭지에 빗대곤 합니다. 옛 표현이 가리키던 자리와, 지금 우리가 아는 분비의 조절이 같은 곳을 보고 있습니다.

마르는 것은 표면만의 일이 아닙니다

건조를 피부와 점막의 일로만 보면 절반입니다. 조직 속 기질도 물을 붙들고 있습니다. 콜라겐과 그 사이를 채우는 성분들이 수분을 얼마나 붙드느냐에 따라 조직이 부드럽기도 하고 뻣뻣하기도 합니다.

가을에 몸이 굳는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 자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쪽은 물을 마셔서 되는 일이 아니고 천천히 낮은 압력을 주거나 온도를 올리는 쪽으로 풀립니다. 가벼운 온욕과 느린 스트레칭이 도움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이렇게 나눕니다

저는 마르는 증상을 들으면 양이 줄었는지, 성질이 바뀌었는지를 먼저 나눠 봅니다. 점성이 올라간 쪽이면 물을 늘리는 이야기보다 왜 분비가 줄었는지를 봅니다.

잠은 어떤지, 요즘 긴장이 이어지고 있는지, 실내가 얼마나 건조한지를 묻습니다. 여름을 어떻게 났는지도 함께 봅니다. 더위에 시달린 몸은 가을에 더 마르기 쉽습니다. (요즘은 여름 나기가 겨울 나기보다 힘듭니다) 가을에는 자는 방의 습도만 손봐 드려도 아침 증상이 달라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입 마름이 계절과 관계없이 오래 이어지거나 눈까지 심하게 마른다면, 침샘과 눈물샘 자체의 문제일 수 있어 진료가 먼저입니다. 드시는 약 중에 입 마름을 일으키는 것이 적지 않으니, 복용 중인 약이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한의학은 마르는 것을 물이 모자란 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인삼에 붙은 생진지갈이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물을 부어 넣으라는 것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내게 하라는 쪽입니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입이 끈적하다는 분들을 진료실에서 보고 나서야, 옛 표현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마른 숲에 물을 뿌리는 일과, 숲이 스스로 물을 머금게 하는 일은 다릅니다. 옛 처방이 겨눈 쪽은 뒤쪽이었고, 지금 생리학이 그 자리에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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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