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봅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이렇게 봅니다〉 · 11편 중 3번째
짧은 답
검진 결과지 세 장을 나란히 펴 놓으면 한 장으로는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어느 줄도 선을 넘지 않았는데 세 줄이 같은 쪽으로 가고 있을 때 저는 그것을 봅니다.
진료실 책상에 종이 세 장을 나란히 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재작년, 작년, 올해 검진 결과지입니다.
한 장만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세 장을 나란히 놓으면 보입니다. 어느 줄도 선을 넘지 않았는데, 세 줄이 같은 쪽으로 조금씩 가고 있습니다. 종이마다 찍힌 '정상'은 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그 표는 줄을 하나씩 재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줄과 줄이 함께 움직였다는 것까지는 적어 주지 않습니다.
종이 한 장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기준선은 병을 가르려고 그은 선이지, 건강한 몸이 머무는 곳을 표시한 선이 아닙니다. 그러니 모든 줄이 선 안쪽에 있는데도 몸은 달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표는 줄을 하나씩 재도록 만들어졌고, 몸은 여럿이 함께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몸에서 달라지는 일은 한 곳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피로가 수치보다 먼저 오고, 저울 눈금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혈압과 혈당과 체중은 서로를 밀어 주고, 지질 네 줄에도 움직이는 차례가 있었습니다. 경계마저 한 번에 뚫리기보다 여러 겹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쪽이 흔했습니다.
하나씩 재면 다 정상입니다. 제가 오래 붙들고 있는 자리가 거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치 하나가 얼마인지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여럿을 함께 놓고, 그것들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봅니다. 어느 하나도 아직 병이 아닐 때, 그 방향이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이 세 장을 나란히 놓는 데는 몇 초면 됩니다. 그 몇 초가 한 장만 볼 때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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