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만성통증 클리닉
칼럼 최종 수정

눌려 있는 자리와 흐르는 자리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피가 실제로 도는 정도는 미는 힘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미는 압력에서 그 자리를 누르는 압력을 뺀 만큼 흐릅니다. 한 자리만 늘 저리고 무거운데 검사는 정상인 이유입니다.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나면, 눌려 있던 자리가 저리고 무겁습니다. 팔을 베고 자면 그 팔이 남의 살처럼 먹먹해집니다. 잠깐 지나면 대개 풀리지만, 저는 이 흔한 일이 몸의 중요한 규칙 하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피가 흐르려면 미는 힘이 눌리는 힘을 이겨야 합니다

피는 심장이 미는 힘으로 흐릅니다. 그런데 그 피가 어떤 자리에 실제로 도달하려면, 미는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자리를 누르고 있는 힘보다 미는 힘이 높아야 합니다.

호스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수도꼭지를 아무리 세게 틀어도, 누군가 호스를 발로 밟고 있으면 물이 잘 안 나옵니다. 수압이 약해서가 아니라, 밟는 힘이 그 자리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도 같습니다. 어떤 조직이 눌려 그 안의 압력이 오르면, 심장이 미는 힘이 그대로여도 그 자리에는 피가 덜 갑니다.

그래서 조직에 피가 실제로 도는 정도는 미는 힘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미는 압력에서 그 자리를 누르는 압력을 뺀 만큼 — 그 차이만큼 흐릅니다. 이 '실제로 도는 압력'을 관류압이라고 합니다.

눌린 자리는 스스로 더 눌리는 쪽으로 갑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겹칩니다.

피가 덜 도는 자리는 산소가 모자랍니다. 산소가 모자라면 그 조직은 붓기 쉽고, 노폐물이 잘 안 빠져 그 자리의 압력이 더 오릅니다. 압력이 오르면 피는 더 못 돌고, 못 돌면 다시 더 붓습니다. 한번 눌리기 시작한 자리가 스스로 더 눌리는 쪽으로 도는 고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래 앉았다 일어날 때의 저림은 금세 풀리지만, 이 고리가 길어지면 그 자리는 뻣뻣하게 굳어 갑니다.

저는 몸 곳곳에서 이 고리를 봅니다. 오래 굳어 있던 어깨, 늘 무겁다는 종아리, 한 자세로 눌려 온 허리. 겉으로는 다른 병처럼 보여도, 바탕에는 같은 규칙이 있습니다. 미는 힘과 누르는 힘의 줄다리기.

그래서 혈압이 정상이어도 그 자리는 다릅니다

혈압 검사는 심장이 피를 미는 힘을 잽니다. 몸 전체에 흐르는 큰 압력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특정 자리를 누르는 힘까지 재 주지는 않습니다. 전체 혈압은 정상인데, 어느 눌린 자리에서는 관류압이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혈압도 괜찮고 피 검사도 괜찮다는데 왜 이 자리만 늘 저리고 무겁냐"는 물음이 여기서 나옵니다.

미는 힘이 낮아 흐름이 줄어드는 것과, 미는 힘은 멀쩡한데 눌리는 힘이 높아 흐름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앞은 혈압으로 잡히고, 뒤는 잘 안 잡힙니다. 저는 이 뒤쪽을, 눌린 자리를 손으로 풀고 자세를 바꾸어 가며 함께 봅니다.

다만 급한 신호는 다릅니다

한 가지만 짚어 두겠습니다. 어떤 자리가 갑자기 창백해지고 차가워지며 심하게 아프거나, 저림이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 이야기와 다릅니다. 흐름이 완전히 막히는 급한 상태일 수 있으니, 그때는 손으로 풀 일이 아니라 곧바로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눌려 있던 자리가 풀리며 찌릿하게 피가 도는 그 느낌. 거기에 몸의 규칙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흐름은 미는 힘 혼자 정하지 않고, 그 자리를 누르는 힘과의 차이로 정해진다는 것.

한 자리만 늘 저리고 무거운데 검사는 정상이라면, 그것은 피가 모자란다는 신호라기보다 그 자리가 눌려 제 몫의 흐름을 못 받고 있다는 몸의 보고서일 때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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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