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수 있는 일
〈저는 진료실에서 이렇게 봅니다〉 · 11편 중 7번째
짧은 답
"석 달 뒤에 다시 봅시다"의 석 달은 임의로 정한 기간이 아닙니다. 몸 안에서 무엇이 그 사이에 바뀌는지를 알면 오늘 할 수 있는 일도 정해집니다.
"석 달 뒤에 다시 봅시다."
검진을 받고 나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저도 진료실에서 자주 씁니다. 그런데 이 석 달이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는 잘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임의로 정한 기간이 아닙니다.
그 검사가 담는 기간이 있습니다
당화혈색소라는 검사가 있습니다. 지난 두세 달의 혈당 평균을 본다고 알려져 있는데, 왜 하필 두세 달일까요.
적혈구가 대략 그만큼 살기 때문입니다. 혈액 속의 당은 적혈구 안의 단백질에 조금씩 들러붙고, 한번 붙으면 그 적혈구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뽑은 피에 들어 있는 적혈구들은 지난 석 달 동안의 기록을 저마다 나눠 지고 있는 셈입니다.
석 달 뒤에 다시 재자는 말은, 그 사이의 기록이 새로 쌓이는 데 그만큼 걸린다는 뜻입니다. 두 주 만에 다시 재면 아직 예전 적혈구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어 기록이 바뀌지 않습니다. 몸이 달라지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검사마다 담는 기간이 다릅니다
이 이야기는 당화혈색소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검사마다 담고 있는 기간이 다릅니다.
어떤 수치는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에 흔들립니다. 어떤 수치는 몇 주의 평균에 가깝고, 어떤 것은 몇 달, 어떤 것은 그보다 긴 세월을 담습니다. 몸 안에서 부위마다 시계가 다르게 도는 이야기는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시계가 검사지 위에도 그대로 옮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은 검사지를 놓고도 언제 다시 재느냐에 따라 읽히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시점을 잘못 잡으면 잘 가는 것을 접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관리에서 자주 어긋난다고 봅니다.
몇 달이 걸리는 줄을 두 주 만에 확인하고, 그대로인 것을 보고 소용없다고 접는 일이 흔합니다. 반대로 며칠이면 답하는 것을 몇 달 뒤에야 확인하느라, 그 사이에 방향이 어긋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언제 물을지를 미리 나눠 둡니다. 며칠에서 몇 주 안에 대답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잠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지, 식사 뒤에 졸린 정도가 달라졌는지, 오후에 다리가 덜 무거운지. 수치가 아직 안 움직였어도 방향은 여기서 먼저 보입니다.
한약을 쓸 때 기간을 미리 말씀드리는 이유도 같습니다. 어느 줄을 겨누고 있는지에 따라 확인할 시점이 다릅니다. 두 주 뒤에 물어야 할 것과 석 달 뒤에 물어야 할 것을 섞으면, 잘 가고 있는 치료를 중간에 접게 됩니다.
다만 몇 주 사이에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면 이 시간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없던 통증이 밤마다 깨우거나 체중이 저절로 빠지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다음 검사를 기다릴 일이 아닙니다.
오래 걸린다는 말은 대개 나쁜 소식으로 들립니다. 저는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늦게 답한다는 것은 늦게까지 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바퀴가 긴 것은 하루아침에 나빠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대신 오래 쌓은 쪽이 오래 남습니다.
오늘 한 일이 오늘 표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줄이 대답하는 날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결과를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그 날짜가 오기 시작하게 하는 일입니다.
참고한 자료
- 당화혈색소는 지난 약 90일의 평균 혈당을 반영하며, 적혈구의 평균 수명이 약 3개월이기 때문이다. 치료가 바뀐 경우 3개월마다 다시 재도록 권고된다 — StatPearls, Hemoglobin A1C, 2025
- 뼈는 평생 헐고 다시 짓기를 되풀이하며, 그 한 바퀴는 다른 조직보다 긴 시간에 걸쳐 돌아간다 — StatPearls, Physiology, Bone Remodeling, 2023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