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자율신경 클리닉
칼럼 최종 수정

기운이 없다면서 왜 이렇게 예민할까요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아이가 지쳐 있는데 사소한 일에 크게 반응합니다. 힘이 빠지면 조용해질 것 같은데 반대로 시끄러워집니다. 여력이 줄면 반응이 커지는 이 자리는 한의학이 오래 이름을 붙여 온 대목이고, 현대 약리에도 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애가 기운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또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굴어요."

이 두 말씀이 한 문장 안에서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십니다. "이게 앞뒤가 안 맞잖아요."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힘이 빠지면 반응도 줄어들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몸은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여력이 줄면 반응이 커지기도 합니다

소리가 유난히 거슬리고, 옷의 상표가 배긴다고 하고, 냄새에 예민하고, 사람 많은 곳에 다녀오면 유독 지칩니다. 그러면서 정작 기운은 없습니다.

약해진 것과 예민해진 것이 함께 옵니다. 둘 중 하나가 진짜이고 하나가 가짜인 것이 아니라, 같이 있는 상태입니다.

몸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약리학이 쓰는 이름이 있습니다.

신경이 보내는 신호가 줄어들면, 그것을 받는 쪽 세포가 받는 자리를 늘립니다. 들어오는 소리가 작아지니 귀를 키우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적은 신호에도 반응이 크게 납니다. 이것을 수용체 상향조절이라고 부릅니다. 신경 입력이 끊긴 자리가 남은 자극에 훨씬 크게 반응하는 현상에는 탈신경 과민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약해진 쪽이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워지는 것 — 이건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몸이 자주 쓰는 방식입니다.

한의학은 이 그림을 오래 갖고 있었습니다

한의학에는 허즉항(虛則亢)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어 있으면 오히려 항진된다는 뜻입니다. 바탕이 마르면 불이 뜬다는 표현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기운이 없는데 잠은 얕고, 지쳤는데 사소한 일에 놀라고, 힘이 없는데 두근거린다 — 옛 의서가 적어 둔 이 조합은 진료실에서 지금도 그대로 옵니다.

이 그림은 누구에게나 담기 어려운 종류입니다. 약해진 것과 과민한 것을 한 자리에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은 그것을 담을 말을 오래 갖고 있었고, 현대 약리는 거기에 자기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이 둘이 만나는 자리가 흥미롭습니다.

아이에게는 대개 잠에서 시작됩니다

아이에게 이 상태가 만들어지는 통로 중 손에 잡히는 것이 잠입니다.

잠이 모자라면 아픔을 느끼는 문턱이 내려간다는 것은 사람에게서 재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더 눈여겨볼 것이 함께 확인되었습니다. 몸이 스스로 통증을 눅이는 기능 자체가 약해집니다. 같은 자극인데 눅이는 쪽이 힘을 잃습니다.

여기에 학원 일정과 늦은 잠이 겹치면 아이는 매일 조금씩 여력이 깎인 상태로 지냅니다. 그러면 같은 소리, 같은 옷, 같은 교실이 전보다 크게 옵니다. 아이가 유난해진 것이 아니라 눅이는 힘이 줄어든 상태에 가깝습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보는 것

저는 예민함을 없애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눌러서 조용하게 만드는 것과 여력이 돌아와 저절로 덜 반응하게 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깨는지, 아침에 일어난 뒤 얼마 만에 배가 고파지는지, 낮에 어느 시간대에 무너지는지를 묻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깎였는지가 아이마다 달라서, 같은 이야기를 들고 와도 손대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부모님께는 이 말씀을 꼭 드립니다. 기운이 없으면서 예민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체중이 줄거나, 자다가 깰 만큼 아파하거나, 열이 오래가거나, 전에 하던 것을 갑자기 못 하게 되었다면 —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진료를 먼저 받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낮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졸린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 글은 검사에서 별다른 것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계속 그런 상태일 때, 그 사이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아침에 못 일어나는 쪽이 더 걱정이시라면 아무리 깨워도 아침에 못 일어납니다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이 나이에는 몸의 시계가 실제로 뒤로 밀립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이 글이 자기 얘기 같으셨습니까?

진료 시간을 바로 고르시거나, 오시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을 먼저 보내실 수 있습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29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과 《검사 밖의 몸》(2026) 두 권을 썼습니다. 앞의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뒤의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