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칠지 아는 일
〈몸이 스스로를 지키는 법〉 · 8편 중 6번째
짧은 답
잔병이 끊이지 않는데 검사에서는 정상이라고 나오나요. 백신에 들어 있는 것은 힘이 아니라 얼굴입니다. 면역을 볼 때 저는 얼마나 센가보다 무엇을 칠지 아는가, 그리고 제때 멈추는가를 먼저 봅니다.
예방접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면역을 세게 만드는 주사로 여깁니다.
그런데 백신에 들어 있는 것은 힘이 아닙니다. 얼굴입니다. 이런 것이 들어오면 이렇게 대응하라고 미리 보여 주는 일이지, 면역의 세기를 올려 주는 일이 아닙니다. 예방접종이 하는 일을 한마디로 줄이면 겨냥을 정해 두는 일입니다.
저는 면역을 볼 때 이 대목을 먼저 생각합니다. 얼마나 센가보다, 무엇을 칠지 알고 있는가입니다.
겨냥이 흐트러지면 벌어지는 일
겨냥이 흐트러진 면역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꽃가루나 먼지처럼 해롭지 않은 것에 과하게 반응하면 알레르기라고 합니다. 아예 자기 조직을 적으로 오인해 치면 자가면역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둘 다 면역이 약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차게 일하고 있는데 방향이 어긋난 쪽입니다. 그러니 면역을 무조건 세게 만드는 쪽이 답이라면 이 둘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멈추는 일도 면역이 하는 일입니다
면역에는 치는 손만 있지 않습니다. 자기 몸은 치지 않도록 붙드는 장치가 따로 있습니다.
이 붙드는 일은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늘 힘을 들여 유지됩니다. 무엇을 칠지 가려내고 일이 끝나면 그만두게 하는 쪽이 계속 일하고 있어야 자기 몸이 안전합니다.
그러니 면역이 잘 돌아간다는 말에는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필요할 때 치는 일과, 치지 않아야 할 때 멈추는 일입니다.
밖에서 들어온 것이 없어도 경보는 울립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면역이 읽는 신호는 밖에서 들어온 쪽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치거나 지친 자기 세포에서 흘러나온 조각도 경보로 읽힙니다. 원래 세포 안에 있어야 할 물질이 밖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염이 없는데도 면역의 스위치가 켜져 있는 상태가 생깁니다. 오래 지친 몸에서 낮은 불씨가 꺼지지 않는 데에는 이런 경로가 걸려 있습니다.
검사는 수를 셉니다
혈액 검사는 면역세포가 몇 개인지, 어떤 항체가 있는지를 잽니다. 정확하게 잽니다.
다만 그 면역이 정확히 겨누고 제때 멈추는지는 세는 항목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는 정상인데 잔병이 끊이지 않을 수 있고, 수는 정상인데 해롭지 않은 것에 과하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부품이 아니라 부품 사이의 물림이 흔들린 경우입니다.
제가 보는 것들
그래서 저는 면역을 올리는 쪽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겨냥과 멈춤이 흐트러진 조건을 먼저 봅니다. 잠이 짧아졌는지, 긴장이 오래 켜져 있는지, 몸 어딘가에 꺼지지 않은 낮은 불씨가 있는지.
한약을 쓸 때도 면역을 세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쓰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어떤 반응은 지나치고 어떤 반응은 제때 끝나지 않는 일이 함께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두 가지가 흐트러질 만한 것들을 먼저 봅니다. 잠이 짧아졌는지, 긴장이 오래 이어졌는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염증이 남아 있는지.
다만 감염이 자꾸 되풀이되거나, 원인 모를 발열이나 체중 감소가 이어지거나, 관절이 여러 곳에서 함께 붓는다면 이 이야기를 넘어선 신호입니다. 조율을 다루기 전에 가려야 할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면역을 세기로만 생각하면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둘은 면역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겨냥이 어긋나서 생기니까요.
저는 이 그림을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세기는 마음대로 올릴 수 없지만, 겨냥과 멈춤이 흐트러지는 조건 — 잠과 긴장과 남아 있는 불씨 — 은 손댈 수 있는 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잔병이 끊이지 않는데 검사는 정상이라면, 면역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닐 수 있습니다. 겨누고 멈추는 조율이 흔들린다는 몸의 이야기입니다.
참고한 자료
- 자기 세포에서 흘러나온 물질이 손상 신호로 읽혀 면역과 염증을 켠다는 정리 — 감염이 없어도 면역이 활성화되는 경로 — Journal of Immunology Research, 2015
- 자기 조직을 치지 않도록 붙드는 말초 관용이 저절로 유지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설명 — Trends in Immunology, 2017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