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다니고부터 감기를 달고 삽니다
짧은 답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감기를 자주 앓고 밥도 잘 안 먹습니다. 이 둘은 따로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앓는 동안 입맛이 떨어지는 것은 몸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회복의 순서도 정해져 있습니다.
목차
"어린이집 보내고부터 감기를 달고 삽니다. 나으면 또 걸리고, 낫는가 싶으면 또 걸리고요."
여기에 거의 항상 한 가지가 붙어 옵니다. "그러면서 밥을 통 안 먹어요."
부모님은 이 둘을 따로 말씀하시지만, 저는 한 이야기로 듣습니다.
그 나이에 감기가 잦은 것은 몸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그날부터 만나는 사람의 수가 몇 배가 됩니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종류가 대단히 많고, 아이는 그중 대부분을 아직 만난 적이 없습니다.
면역은 만나 본 적이 있어야 기억합니다. 처음 만나는 바이러스에는 준비된 대응이 없으니 앓으면서 배웁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아이가 한 해에 610회 감기를 앓는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른의 24회와 견주면 많아 보이지만, 그 또래에서는 그게 보통입니다. 단체 생활을 하거나 형제가 있으면 더 잦습니다.
앓는 횟수가 곧 면역이 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기에 배워 두는 것이 나중의 몫을 줄입니다. 물론 아이마다 회복이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고, 저는 그 차이를 봅니다.
앓는 동안 입맛이 떨어지는 것은 몸이 시킨 일입니다
여기가 부모님이 가장 놀라시는 대목입니다.
몸이 감염과 싸울 때는 염증 신호 물질이 나옵니다. 그 물질들은 병원체를 잡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식욕을 다루는 자리에도 작용해서 먹고 싶은 마음을 눌러 놓습니다. 열이 나고 처지고 눕고 싶어지는 것도 같은 신호가 하는 일입니다.
즉 아이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몸이 지금은 먹을 때가 아니라고 정한 것입니다. 소화에 쓸 힘을 잠시 다른 데로 돌려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억지로 먹이면 대개 잘 안 됩니다. 아이는 게워 내거나 더 안 먹으려 하고, 먹는 일이 아이에게 싫은 일로 남습니다.
문제는 회복이 늦게 오는 데 있습니다
앓는 동안 안 먹는 것 자체는 며칠이면 지나갑니다. 제가 실제로 손대는 자리는 그다음입니다.
열이 내리고 기침이 잦아들었는데도 입맛이 안 돌아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사이 또 감기에 걸리면 먹는 양이 회복되기 전에 다시 눌리고, 이것이 몇 번 겹치면 앓는 기간보다 안 먹는 기간이 길어집니다.
그러면 잘 먹어서 회복하는 힘이 줄고, 회복이 늦으니 다음 감기를 더 오래 앓습니다. 부모님이 느끼시는 "감기를 달고 산다"는 상태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제가 보는 것
저는 감기를 막는 쪽보다 앓고 난 뒤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도를 먼저 봅니다.
밥때가 됐는데도 배가 안 고픈 상태가 이어지는지, 먹고 나서 유난히 오래 더부룩해하는지, 배가 늘 부른 듯 나와 있는지 — 이런 것을 묻습니다. 배고픔은 위가 비워질 때 올라오는 신호여서, 위가 비우는 속도가 처져 있으면 배고픔 자체가 잘 안 올라옵니다.
아이에게 쓰는 약은 어른 것을 줄여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약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회복도 빠른 편이어서, 그 점을 셈에 넣고 짓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이에게 한약을 먹여도 됩니까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집에서 해 보실 만한 것
앓는 중에는 먹는 양을 목표로 삼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과 잠이 먼저입니다.
열이 내린 뒤에는 한 끼를 크게 먹이려 하기보다 조금씩 자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부담이 적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먹는 것을 즐거운 일로 남겨 두시는 편이 길게 봐서 이득입니다. 억지로 먹인 한 끼보다 스스로 손을 뻗은 한 숟갈이 뒤에 더 오래 갑니다.
병원 진료가 먼저인 경우
숨이 가쁘거나, 물조차 넘기지 못하거나, 소변이 뚜렷하게 줄었거나, 열이 여러 날 이어지거나, 처져서 잘 깨지 않는다면 —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먼저입니다. 몸무게가 줄고 있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 글은 앓는 것이 지나간 뒤에도 아이가 제자리로 잘 안 돌아올 때, 그 사이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참고한 자료
- 아이는 한 해에 6~10회 감기를 앓는다는 정리 —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 염증 신호 물질이 뇌에 작용해 식욕을 누르고 처지게 만드는 반응을 정리한 종설 — Immunology and Allergy Clinics of North America, 2009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