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는 것도 일입니다
짧은 답
사람은 중력을 세로로 받습니다. 그 무게를 뼈가 기둥처럼 혼자 받치는 것이 아니라, 당기는 것과 버티는 것이 함께 짜여 몸을 세웁니다. 텐세그리티라고 부르는 구조인데, 그 짜임은 세포 안까지 이어집니다.
목차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힘들어요."
오래 서 있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과장으로 듣지 않습니다. 서 있는 것은 실제로 일입니다.
사람은 중력을 세로로 받습니다
네발로 걷는 동물은 몸무게가 네 곳으로 나뉘고, 등뼈가 다리 사이에 가로로 걸립니다. 사람은 그것을 세워 놓았습니다. 같은 무게가 세로로 쌓입니다.
서면서 얻은 것이 많지만, 그 대신 몸은 늘 자기를 세워 두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앉아 있을 때도, 잠들기 전까지도 그렇습니다.
뼈가 기둥처럼 받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흔한 그림 하나를 바꿔야 합니다. 뼈가 벽돌처럼 쌓여 있고 그 위에 몸이 얹혀 있다는 그림입니다.
실제로는 당기는 것과 버티는 것이 함께 짜여 있습니다. 뼈가 버티는 쪽이라면, 근막과 힘줄과 인대는 사방에서 당기는 쪽입니다. 텐트를 떠올리시면 가깝습니다. 기둥만으로는 서지 못하고, 팽팽한 천과 줄이 함께 있어야 섭니다.
이런 짜임을 텐세그리티(tensegrity)라고 부릅니다. 당기는 힘과 버티는 힘이 균형을 이뤄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를 가리키는 말인데, 저는 몸을 볼 때 이 그림을 중요하게 봅니다.
이렇게 짜여 있으면 한곳에 실린 힘이 여러 곳으로 나뉩니다. 사람이 그만한 무게를 그만한 뼈로 버티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거꾸로도 됩니다. 한 자리가 뻣뻣해져 제 몫을 못 하면, 그 몫이 다른 자리로 갑니다. 아픈 곳과 원인인 곳이 자주 어긋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허리가 아픈데 발을 봅니다)
그 짜임은 세포 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가 저에게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당기고 버티는 구조는 눈에 보이는 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포 안에도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세포는 물풍선처럼 물렁한 주머니가 아니라, 안에 실 같은 뼈대(세포골격)가 밧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모양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조직이 당겨지면 그 힘이 세포막을 지나 세포 안의 뼈대까지 전해집니다. 세포는 그 팽팽함을 읽고 무엇을 만들지 정합니다. 당겨지는 자리에서는 버틸 재료를 만들고, 그 자극이 사라지면 만들기를 줄입니다.
안 쓰는 조직이 마르는 것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당겨지지 않으니 만들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누르는 힘 자체를 세포가 어떻게 알아채는지는 미는 힘이 세포에 말을 거는 자리에 따로 적었습니다.
굳는다는 것은 물 사정이 달라진 것입니다
층마다 나눠 지려면 사이사이가 미끄러져야 합니다. 그 미끄러짐을 맡는 것이 조직 사이를 채운 바탕질(기질)이고, 그중에서도 히알루론산을 비롯한 성분이 얼마나 물을 붙들고 있느냐가 그 성질을 정합니다.
물을 잘 붙들고 있으면 부드럽게 흐르고, 물 사정이 나빠지면 엉겨 뻑뻑해집니다. 굳었다는 말은 재료가 굳었다기보다 그 사이의 물 사정이 달라졌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되는 데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오래된 낮은 불씨 같은 염증, 급한 염증에서 나오는 분해 효소, 산성으로 기운 환경, 그리고 잘못 걸린 기계적 자극이 겹칩니다. 어느 하나가 범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게 누르지 않습니다
이 성질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천천히 낮은 압력을 주거나, 온기를 주면 되돌아옵니다.
세게 누르거나 빠르게 밀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급한 힘은 버티는 쪽을 자극해 더 조이게 만듭니다. 제가 시술에서 힘을 아끼고 시간을 쓰는 이유입니다. (뼈를 꺾지 않는 추나)
한약 쪽에서도 같은 자리를 봅니다. 몸속 온도와 국소 혈류를 올려 엉긴 바탕질을 다시 흐르게 하는 쪽입니다. 건강 같은 약재가 그 몫을 맡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어디를 보는가
오래 서 있거나 오래 앉아 있는 분이 오시면, 저는 아픈 자리와 함께 어느 자리가 제 몫을 못 하고 있어서 그 부담이 여기로 왔는지를 봅니다.
서 있는 것이 일이라면, 그 일을 나눠 지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밤에 더 심해지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대소변 조절이 달라졌다면 —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진료와 검사가 먼저입니다.
참고한 자료
- 근막 사이의 바탕질이 뻑뻑해지면 층 사이가 미끄러지지 못하고 뻣뻣해진다는 것, 그리고 기계적 힘이 세포의 일을 바꾼다는 것을 함께 정리한 종설 — Frontiers in Pain Research, 2025
- 만성 요통이 있는 71명과 없는 50명을 견주었더니 요통이 있는 쪽에서 근막 층 사이가 미끄러지는 정도가 약 20% 낮았습니다 — BMC Musculoskeletal Disorders, 2011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