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만성통증 클리닉
읽는 데 약 3분 최종 수정

먹은 약이 어떻게 아픈 곳을 찾아갈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온몸을 도는 약이 왜 하필 아픈 곳에서 작용할까요. 저는 약이 부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부위가 약을 붙잡는다고 봅니다.

"입으로 먹은 약이 어떻게 아픈 데를 알고 찾아가나요?"

진료실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고, 좋은 질문입니다. 약은 위장으로 들어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돕니다. 발끝에도 가고 머리끝에도 갑니다. 그런데 왜 하필 아픈 곳에서 작용할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약이 아픈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픈 곳이 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아픈 곳은 주변과 화학적으로 다릅니다

염증이 있는 조직은 옆의 멀쩡한 조직과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겉으로는 그냥 "아픈 데"지만, 안에서는 세 가지가 달라져 있습니다.

첫째, 산성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염증이 생기면 그 부위의 세포는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에너지를 만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산성 물질이 쌓입니다. 주변보다 pH가 낮아집니다.

둘째, 압력이 높아져 있습니다. 부어오르고, 체액이 고이고, 조직이 팽팽해집니다. 이 압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작용합니다 — 높은 압력은 성분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기 어렵게 만듭니다. 대신 한번 들어온 것은 잘 빠져나가지도 못합니다. 들고 나는 것이 양쪽 다 더뎌지는 자리입니다.

셋째, 혈관이 헐거워져 있습니다. 염증 부위의 혈관은 벽이 느슨해져서 물질이 잘 새어 나옵니다. 면역세포를 그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몸의 장치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혈액을 도는 약물 성분은 대개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다른 물질과 결합한 상태로 이동하다가, 조건이 맞는 곳에서 결합이 풀립니다.

그 조건이 바로 위의 것들입니다. 혈관이 헐거운 곳에서 새어 나오고, 산성으로 기운 곳에서 결합이 풀립니다. 그리고 압력이 높아 배액이 더딘 자리에서는, 들어간 것이 오래 남습니다.

약 성분이 온몸을 돌다가
        ↓
혈관이 헐겁고 · pH가 다르고 · 배액이 더딘 자리를 만나면
        ↓
결합이 풀리고 조직으로 새어 나와 머문다
        ↓
그 자리에서 작용이 강해진다

성분은 온몸에 다 갑니다. 다만 작용이 두드러지는 자리가 따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진료를 바꿉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치료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흔한 접근은 "어떤 성분이 통증에 좋은가"를 묻습니다. 저는 한 걸음 앞에서 묻습니다. "이 사람의 아픈 조직은 지금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

  • 압력이 높아 순환이 막힌 곳인가
  • 체액이 고여 빠지지 않는 곳인가
  • 오래 굳어 물질이 드나들지 못하는 곳인가
  • 은근한 염증이 식지 않고 남은 곳인가

같은 허리 통증이라도 이 답이 다르면 처방이 달라집니다. 어떤 분에게는 고인 것을 빼는 방향이, 어떤 분에게는 굳은 것을 무르게 하는 방향이, 어떤 분에게는 과열된 신경을 식히는 방향이 필요합니다.

약을 고르기 전에, 그 약이 도착할 자리의 조건을 먼저 봅니다.

한의학이 오래 해 온 이야기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막힌 곳", "고인 곳", "열이 뭉친 곳"이라는 말을 써 왔습니다. 저는 이 말들을 은유로만 읽지 않습니다.

  • 막힌 곳 — 순환과 물질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조직
  • 고인 곳 — 체액이 정체되어 압력이 높아진 조직
  • 열이 뭉친 곳 — 염증이 지속되며 화학적 환경이 달라진 조직

옛 사람들이 손끝과 눈으로 읽어낸 것을, 지금 우리는 압력과 산-염기와 혈관 투과성의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한의학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그 관찰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아픈 곳을 만져 보는가

제가 진료할 때 아픈 곳뿐 아니라 그 주변을 넓게 만져 보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굳었는지 물렁한지, 눌렀을 때 압력이 어디로 밀리는지, 열이 있는지 오히려 차가운지. 이것들은 그 조직이 놓인 환경을 알려 주는 신호입니다. 영상 검사가 뼈와 구조를 보여 준다면, 손은 환경을 읽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정상인데도 아픈 경우, 손으로 읽어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그렇다고 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약이 어떻게 아픈 데를 찾아가나요"라는 질문에 "원래 그렇게 됩니다"라고 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아시는 편이 치료를 함께 끌고 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진료가 필요하신 경우

이 글이 자기 얘기 같으셨습니까?

진료 시간을 바로 고르시거나, 오시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을 먼저 보내실 수 있습니다.

이 글과 관련된 진료 안내 — 만성통증 클리닉 →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