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만성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
"이거 만성이라 이제 어렵습니다."
오래 아프셨던 분들이 다른 곳에서 듣고 오시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반만 받아들입니다. 만성이 되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왜 어려워지는지를 알면, 어디를 손대야 하는지도 보입니다.
다치지 않았는데 계속 아픈 이유
통증은 원래 경고입니다. 다친 곳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다친 곳이 아물면 신호도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통증이 오래 이어지면, 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회로 자체가 달라집니다.
신경과 신경이 만나는 지점을 시냅스라고 합니다. 통증 신호가 계속 지나가면 이 연결이 점점 강해집니다. 자주 다니는 길이 넓어지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 작은 자극에도 크게 아픕니다
- 아프지 않아야 할 자극(스치는 것, 옷깃)에도 아픕니다
- 다친 곳이 다 나은 뒤에도 통증만 남습니다
- 아픈 범위가 처음보다 넓어집니다
통증이 원인을 떠나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개월과 6개월이라는 시간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략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 기간 | 몸에서 일어나는 일 |
|---|---|
| ~3개월 | 신경 연결에 변화가 시작됨. 아직 되돌리기 쉬운 시기 |
| 3~6개월 | 변화가 자리를 잡음. 통증이 원인과 분리되기 시작 |
| 6개월~ | 회로가 굳음. 되돌리는 데 시간과 방법이 모두 필요 |
여기서 3개월, 6개월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확한 시계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통증의 종류마다 다릅니다. 다만 오래 둘수록 굳는다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 아프신 분께 "왜 이제야 오셨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부터 얼마나 걸릴지"를 함께 계산합니다.
그런데 굳은 회로도 풀립니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입니다.
신경 회로가 강해지는 성질은, 반대로 약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회로를 굳게 만든 그 성질이 회로를 푸는 데도 쓰입니다. 신경은 굳어 있는 돌덩이가 아니라 계속 다시 배우는 조직입니다.
최근 이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회복 기간은 대략 두 달 안팎입니다. 굳는 데 몇 달이 걸렸다면, 푸는 데도 비슷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회복이 더 빠를 수 있다는 관찰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가만히 두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무엇이 회로를 푸는가
굳은 통증 회로를 푸는 데는 두 방향이 함께 필요합니다.
첫째, 계속 올라오는 신호를 줄여야 합니다. 아픈 곳에서 신호가 계속 올라오는 한, 회로는 계속 그 길을 다집니다. 압력이 높아 굳은 조직, 고인 체액, 식지 않는 염증 — 이런 것들이 신호의 원천입니다. 여기에 손을 대야 합니다.
둘째, 회로 자체에 새로운 경험을 줘야 합니다. 아프지 않게 움직이는 경험, 안전하게 자극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통증이 줄어드는 만큼 반드시 움직임을 함께 넣습니다. 쉬는 것만으로 낫는 만성 통증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한약과 침, 수기 치료가 하는 역할이 갈립니다.
- 수기 치료와 침 — 굳은 조직을 풀고, 지금 올라오는 신호를 줄입니다
- 한약 — 하루 종일 이어지는 지속적인 신호를 몸에 건넵니다. 치료실을 떠난 시간에도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 움직임 — 회로에 새 경험을 새깁니다
간헐적인 치료만으로는 부족하고, 약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셋이 같은 방향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회복은 물결처럼 옵니다
오래된 통증이 낫는 과정은 직선이 아닙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합니다. 많은 분이 이 지점에서 좌절하십니다. "역시 안 되나 보다" 하고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회복은 물결의 진폭이 서서히 줄어드는 일입니다. 나빠지는 날이 있어도, 그 바닥이 조금씩 얕아지고 있다면 방향은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아진 날보다 나빠진 날이 얼마나 덜 나빠졌는지를 함께 봅니다.
마지막으로
만성 통증에서 정확한 기간을 약속하지는 않겠습니다. 신경의 회복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여기서 말씀드린 기간들도 계속 새로 밝혀지고 있는 영역입니다.
다만 "만성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문장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굳었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되돌리는 데 순서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아프신 것이 몇 년째라도, 그 회로는 어제도 오늘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무엇을 배우게 할지는 아직 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