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뇌에 말을 걸 때
짧은 답
아랫배가 아팠다가, 명치가 답답했다가, 신물이 올라왔다가 — 검사는 그때마다 정상인데 증상만 옮겨 다니는 건 왜일까요? 장염이 나은 지 2년 뒤에도 장의 신경이 과민한 채로 남아 있었다는 사람 실험이 있습니다. 양이 아니라 느끼는 쪽의 문턱을 봅니다. 체중 감소·혈변·야간 통증은 대장 검사가 먼저입니다.
목차
복부의 불편한 곳이 때마다 달라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아랫배가 아프고, 어느 때에는 명치가 부풀어 답답하고, 또 어느 때에는 신물이 올라온다고 하십니다.
검사는 그때마다 별문제가 없다고 나옵니다.
환자분은 증상이 자꾸 달라져 스스로도 갈피를 잡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세 가지 다른 병으로 보지 않습니다.
배와 뇌 사이는 이미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장과 뇌가 신호를 주고받는 길(장-뇌 축) 이야기는 이제 널리 알려졌습니다. 긴장하면 배가 아프고, 배가 불편하면 기분과 각성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주신경의 장 구간에는 장 쪽 정보를 뇌로 올리는 감각섬유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배는 듣기만 하는 쪽이 아니라 계속 정보를 보내는 쪽입니다.
이 글은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말을 걸던 일이 끝난 뒤에도 걸던 버릇이 남습니다.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는 것
장염을 앓고 나서 배가 계속 불편한 분들이 계십니다. 균은 이미 없어졌고 염증도 가라앉았는데 불편만 남습니다.
이것이 기분 탓인지 아닌지를 사람에게서 확인한 실험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서 장의 조직을 아주 조금 떼어 내어, 몸 밖에서 신경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았습니다. 감염이 나은 지 2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떼어 낸 신경은 접시 위에서도 여전히 과민했습니다.
몸을 떠나 있었으니 마음도, 스트레스도, 그날의 기분도 거기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민했습니다. 감각을 받는 쪽 자체가 이미 그렇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저는 오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어떤 예민함은 상황이 아니라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왜 남는가
약해지면 받는 쪽이 더 예민해진다는 것과 모양이 닮았습니다. 신호가 줄면 받는 쪽이 귀를 키우고, 그 상태가 오래가면 그것이 기준이 됩니다.
양이 아니라 느끼는 쪽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을 볼 때 양을 먼저 의심하지 않습니다.
신물이 올라온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흔히 위산이 많아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 보면 쓰린 것보다 울렁거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런 분께는 나오는 양이 늘어났는지보다 느끼는 쪽의 문턱(역치)이 내려갔는지를 함께 봅니다.
배가 부글거린다고 하시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스가 실제로 많은 분도 계시지만, 같은 양이 크게 느껴지는 분도 계십니다. 이 둘은 겉으로 같은 말인데 짚을 곳이 다릅니다.
증상이 그때마다 옮겨 다닙니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증상이 옮겨 다닐 때 저는 한 계통의 감각 조절이 함께 달라졌는지도 봅니다. 다만 위치가 바뀐다고 병이 하나라고 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때그때 새 증상의 경고 신호를 다시 가리고, 이전 증상과 실제로 이어지는지를 봅니다.
옮겨 다니는 증상 가운데에는 검사가 먼저인 것도 있습니다. 아래에 따로 적었습니다.
먼저 받는 것은 신경이 아닙니다
장 안의 내용과 신경 사이에는 점막 장벽과 여러 감각세포가 놓여 있습니다. 일부 자극은 상피·내분비세포가 감지해 가까운 신경 말단에 전달하고, 신경 말단도 점막 아래에서 여러 신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신경만이 아니라 점막과 그 주변도 함께 볼 까닭이 생깁니다.
점막 쪽에 약을 씁니다
저는 신경을 눌러 조용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점막이 놓인 환경을 바꾸는 쪽으로 갑니다.
한약을 「신경을 누른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점막이 놓인 환경, 장이 움직이는 방식, 신호를 받아들이는 쪽. 이 셋은 서로 다른 층입니다. 사람마다 어느 쪽이 큰지도 다릅니다.
신경계는 가소성이 있어 감도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내려올 수 있다는 것과, 누구에게 얼마나 내려오느냐는 다른 말입니다.
검사가 먼저인 경우
체중이 뚜렷하게 빠지거나, 피가 섞여 나오거나, 밤에 아파서 깨거나, 열이 함께 있거나, 빈혈이 있거나, 오십이 넘어 없던 증상이 처음 생겼다면 — 먼저 확인할 곳이 있습니다. 대장 검사가 앞섭니다.
증상이 옮겨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한 계통의 문제라고 정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 생긴 증상은 그때마다 먼저 확인합니다.
중요한 질환을 가린 뒤에도 같은 양상이 되풀이된다면, 그때는 받는 쪽의 문턱이 어디까지 내려가 있는지가 남은 물음입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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