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난치질환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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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차다'는 말의 오해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손발이 차면 무조건 몸을 데워야 할까요? 온도는 혈류·신경 긴장·조직 상태가 만든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한쪽만 유난히 차거나 색이 변하고 저림·감각 저하가 있으면 혈관·신경 확인이 먼저입니다.

"저는 몸이 차서요."

진료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말입니다. 손발이 얼음장 같고,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주무시고, 배를 만지면 차갑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미 무언가를 하고 계십니다. 따뜻한 차, 뜨거운 물주머니, 몸을 덥힌다는 음식들. 반신욕도 열심히 하십니다.

그런데 잘 낫지 않습니다. 그날은 따뜻해졌다가 다음 날 다시 차갑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질문을 잘못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도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몸이 차다"는 말은 온도를 가리킵니다. 온도가 낮으면 덥히면 됩니다.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하지만 손발이 찬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도는 결과입니다.

피가 손끝까지 잘 가지 않으면 손끝이 차갑습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왜 차가운가"가 아니라 "왜 피가 그곳까지 가지 않는가"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면 답이 여러 갈래로 갈라집니다.

몸이 손발을 포기하는 이유

첫째, 중심이 위태로울 때입니다.

몸은 급할 때 순서를 지킵니다. 심장과 뇌가 먼저입니다. 피가 모자라거나 심장이 힘을 잃으면, 몸은 손끝과 발끝으로 가는 길을 먼저 조입니다.

이때 손발이 찬 것은 고장이 아니라 판단입니다. 몸이 옳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의 손발을 억지로 덥히면, 중심에서 쓸 피를 변두리로 끌어내는 셈이 됩니다.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오래된 설사가 그렇습니다. 흡수가 무너지고 에너지가 끊기면 마지막에 손발이 차가워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손발이 아니라 장과 대사입니다.

둘째, 신경이 계속 긴장해 있을 때입니다.

오래 긴장하면 교감신경이 손발의 혈관을 조여 놓습니다. 위험에 대비하는 자세입니다. 위험이 지나가도 이 자세가 풀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손발만 찬 것이 아닙니다. 잠이 얕고,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손발은 그 긴장이 잘 드러나는 곳일 뿐입니다.

셋째, 조직 자체가 멈춰 있을 때입니다.

가장 설명하기 어렵고, 제가 가장 관심을 두는 자리입니다.

오래 쓰지 않은 조직, 오래 부어 있던 조직, 오래 눌려 있던 조직은 성질이 변합니다. 물을 머금은 채 굳어서, 밀도가 높아지고 무거워집니다. 그 안에서는 물질이 오가지 못하고, 신경 신호도 잘 지나가지 못합니다.

이런 조직은 차갑습니다. 그런데 이 차가움은 온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멈춘 것과 식은 것은 다릅니다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식은 것은 데우면 됩니다. 그러나 멈춘 것은 데운다고 다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전기가 나간 기계에 담요를 덮는다고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담요는 온도를 지켜 줄 뿐입니다. 필요한 것은 다시 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덥히는 일이 아니라 멈춰 선 조직이 다시 반응하도록 흔드는 일입니다.

  • 굳은 조직은 꺾어서 펴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바뀌도록 풀어야 합니다
  • 흐름이 멎은 자리는 뚫는 것이 아니라, 흘러갈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 반응하지 않는 조직은 덥히는 것이 아니라, 반응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려야 합니다

몸이 스스로 하도록 돕는 것이지, 몸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서가 갈립니다

같은 "손발이 참"이라도 무엇이 먼저 무너졌느냐에 따라 손대는 자리가 다릅니다.

먼저 무너진 것 함께 나타나는 것 어디부터 손대는가
흡수와 대사 설사, 체중 감소, 심한 피로 장과 흡수부터
자율신경 불면, 두근거림, 소화불량 긴장한 신경부터
조직의 성질 무겁고 뻣뻣함, 눌러도 잘 안 들어감 굳은 조직부터
순환 자체 다리 저림, 걸으면 아픔 혈관 진료가 먼저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걸을 때 종아리가 아프다가 쉬면 낫는 것을 반복한다면, 이것은 "몸이 찬 것"이 아니라 다리 혈관이 좁아진 것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한의원이 아니라 혈관 진료가 먼저입니다.

검사가 먼저인 경우

손발이 차다고 오시는 분 가운데, 제가 치료보다 검사를 먼저 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쪽만 유독 차고 색이 다르거나, 손가락 끝의 색이 하얗게·파랗게·빨갛게 차례로 변하거나, 손발이 저리면서 감각이 둔해지는 경우입니다. 여기에 앞에서 말씀드린 종아리 통증까지 겹친다면 더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은 혈관이나 신경 쪽에서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덥히는 일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순환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법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에게 갑자기 많은 음식을 주면 탈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몸을 덥힌다는 약재 가운데는 심장 박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어서, 그런 약재는 상태를 확인한 뒤에만 씁니다.


조직이 오래 눌리고 부으면 성질이 변합니다. 그 상태에서는 물질도 신호도 잘 오가지 못합니다.

다만 그 조직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 그리고 한약이 그 과정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아직 사람에게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앞은 진료실에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손발이 찬 모든 분을 제가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가려야 할 병이 있습니다.


"몸이 차서요"라고 말씀하실 때, 저는 그 말을 이렇게 바꿔서 듣습니다.

"제 몸의 어딘가가, 지금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물어야 할 것이 달라집니다. 어디가, 왜, 언제부터 멈추었는가. 그 자리를 찾는 일이 덥히는 일보다 먼저입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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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