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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이는 데가 없는 신호 — 이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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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감수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원장

밤에 종아리에 쥐가 나서 깬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근육이 제멋대로 조여들어 펴지지 않는 그 순간이요.

한의학에는 그 자리에 쓰는 오래된 처방이 있습니다. 작약감초탕 — 감초가 이름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옛 기록은 그 결과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곧 펴진다."

1800년쯤 된 기록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왜 하필 감초였을까. 그리고 왜 빨랐을까.

근육이 조여드는 일은 이온이 하는 일입니다

근육이 조여들려면 칼슘이 세포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칼슘이 문을 통해 들어오고,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근육이 수축합니다. 신경이 신호를 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트륨이 들어오고 칼륨이 나가면서 전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근육이 제멋대로 조여든다는 것은, 그 이온의 드나듦이 흐트러졌다는 뜻입니다.

감초 성분이 하는 일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칼슘이 들어오는 문을 누르고, 칼륨의 균형을 되돌린다고 보고돼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감초의 이 성질을 '완급(緩急)'이라고 적었습니다. 급한 것을 늦춘다는 뜻입니다. 기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급한 것을 늦추는 자리에 정확히 그 약을 놓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로 자꾸 돌아옵니다

몸 안에는 신호가 여럿입니다. 호르몬이 있고, 신경전달물질이 있고, 염증을 알리는 물질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맡은 자리가 다릅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이 이온입니다. 세포와 세포가, 조직과 조직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길에서 이온이 안 끼는 자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신경세포가 신호를 쏘는 일, 근육이 조여드는 일, 심장이 박자를 맞추는 일 — 칼륨과 나트륨과 칼슘이 드나드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대개 첫 마디에 있습니다

여기가 더 중요합니다.

세포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 때, 옆 세포와 손발을 맞출 때, 살아남으려 애쓸 때, 에너지를 더 잘 쓰려 할 때 — 그 연쇄가 시작되는 자리가 이온인 경우가 많습니다.

몸 안의 수많은 단백질, 그 합성이 시작되는 첫 신호가 나트륨이나 칼슘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이 열리고 이온이 들어오면, 그다음부터는 세포 안에서 일이 줄줄이 따라옵니다.

이온은 결과가 아니라 방아쇠 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약과 이온이 만납니다

여기서 한약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약은 세포를 직접 통제할 만한 농도로 작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재 보면 혈액에서 나오는 농도가 아주 낮습니다. 시험관에서 무언가를 확실히 누르려면 훨씬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 (한약은 왜 듣는가 — 농도의 역설)

그래서 한약은 한 곳을 세게 누르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여러 자리를 조금씩, 서로 다른 때에 건드리는 방식입니다. (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그런데 그 '조금씩 건드리는' 자리가 어디냐가 문제입니다.

세포와 그 세포가 놓인 환경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지점을 찾자면, 이온만큼 직접적이고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을 건드리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세포에 닿습니다. 이온은 그 자체가 세포의 말입니다.

그리고 방아쇠 쪽에 있으니, 조금 움직여도 뒤가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이런 뜻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한약은 세게 누르지 못합니다. 농도가 그만큼 안 나옵니다.
  • 그런데 이온은 안 끼는 자리가 없고, 대개 연쇄의 첫 마디에 있습니다.
  • 그러니 적게 건드려도 닿는 자리가 있다면, 그건 이온 쪽입니다.

약한 것과 직접적인 것이 모순이 아닙니다. 세게 못 미는 대신, 말이 통하는 자리를 고르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지금 아는 선입니다

이온이 몸의 신호를 맡고, 많은 연쇄의 첫 마디에 있다 — 여기까지는 생리학이 다루는 내용입니다.

어떤 약재의 어떤 성분이 어느 이온의 흐름을 얼마나 바꾸는지는 하나하나 밝혀지는 중이고,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감초처럼 경로가 꽤 그려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이온을 건드린다고 늘 좋은 것도 아닙니다. 칼슘은 같은 세포 안에서도 많으면 독이 되고 적으면 기능이 무너집니다. 얼마나, 어디서, 언제냐가 전부를 바꿉니다. 그래서 저는 이온을 만능 열쇠가 아니라 가장 직접적인 자리라고 말씀드립니다.

이 조각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잇는 자리부터가 제 해석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전해질에 영향을 주는 약을 드시는지 반드시 묻습니다. 이뇨제, 혈압약, 심장약. 이미 이온이 흔들려 있는 분께 같은 방향으로 미는 약을 더하면 안 됩니다.

설사나 구토가 오래됐는지 묻습니다. 이미 잃은 상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양과 기간을 정합니다. 같은 것이 양에 따라 다른 일을 하는 자리라서, 여기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몸에는 신호가 여럿인데, 이온이 안 끼는 자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대개 연쇄의 첫 마디에 있습니다.

한약이 낮은 농도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약이 세서가 아니라 말이 통하는 자리를 골랐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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