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칼럼 요변성 추나 · 체형교정
블로그 2026년 5월 17일

풀어도 다시 굳는다면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받을 때는 시원한데, 며칠 지나면 그대로예요."

수기 치료를 오래 받아 오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을 치료가 실패했다는 뜻으로 듣지 않습니다. 풀린 것과 바뀐 것이 다르다는 뜻으로 듣습니다.

굳은 조직은 어떤 상태인가

근육과 근막, 인대 같은 결합조직은 단순히 팽팽한 고무줄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물과 젤 같은 물질이 섞여 있습니다.

이 조직에는 흥미로운 성질이 있습니다. 가만히 두면 점점 굳고, 적절히 움직여 주면 서서히 물러집니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요변성(thixotropy)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익숙한 예가 케첩입니다. 병 속에 가만히 있으면 굳어서 쏟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흔들고 두드리면 갑자기 흐릅니다. 성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성질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 몸의 결합조직도 그렇습니다.

  • 오래 같은 자세로 있으면 굳습니다
  • 자고 일어난 아침에 유독 뻣뻣합니다
  • 조금 움직이면 서서히 부드러워집니다
  • 다시 오래 멈춰 있으면 다시 굳습니다

그래서 왜 다시 굳는가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치료로 잠시 물러졌다면, 왜 며칠 만에 되돌아갈까요.

이유는 굳게 만든 조건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굳는 데는 순서가 있습니다.

압력이 오래 높아진다
      ↓
조직의 탄성이 떨어진다
      ↓
세포가 변성되고, 은근한 염증이 남는다
      ↓
조직이 굳는다
      ↓
움직임이 줄어든다
      ↓
압력이 더 높아진다  ← (되돌아감)

이 고리는 스스로 돌아갑니다. 굳으면 덜 움직이고, 덜 움직이면 더 굳습니다.

수기 치료로 굳은 조직을 물러지게 하면, 사슬의 한 지점이 잠시 끊깁니다. 그런데 압력을 만들어 낸 자리가 그대로면, 고리는 곧 다시 돌기 시작합니다.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꺾는 것과 무르게 하는 것

여기서 저는 치료의 방식을 나눕니다.

힘으로 꺾는 방식은 관절을 순간적으로 밀어 위치를 바꿉니다. 소리가 나고, 즉시 시원합니다. 다만 조직의 성질은 그대로입니다. 굳은 조직이 굳은 채로 자리만 옮긴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몸은 갑작스러운 힘에 방어합니다.

무르게 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조직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 그 조직이 스스로 물러지도록 합니다. 요변성이 일어날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극적인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대신 성질이 바뀌므로 잘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제가 뼈를 우두둑 꺾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방법이 순해서가 아니라, 되돌아가지 않는 쪽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조직을 물러지게 해도, 압력을 만든 자리를 찾지 못하면 또 굳습니다.

  • 아랫배의 압력이 높아 허리가 계속 버티고 있는가
  • 횡격막이 굳어 호흡이 얕고, 목과 어깨가 대신 일하고 있는가
  • 한쪽 골반이 틀어져 반대쪽이 계속 균형을 잡고 있는가

아픈 곳은 사슬의 끝이고, 굳게 만든 압력은 사슬의 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아파서 오신 분의 배를 만져 보고, 목이 아파서 오신 분의 호흡을 봅니다.

한약이 맡는 자리

수기 치료는 치료실 안에서만 작용합니다. 그런데 조직이 굳는 고리는 하루 종일 돌아갑니다.

한약은 치료실을 떠난 시간에 작용합니다. 고인 체액을 빼고, 식지 않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압력이 높아진 자리의 순환을 돕습니다. 지속적으로 몸에 신호를 건네는 역할입니다.

수기 치료가 굳은 것을 물러지게 한다면, 한약은 다시 굳지 않을 조건을 만듭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있습니다. 움직임입니다. 요변성은 자극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가만히 누워 계시면 조직은 다시 굳습니다. 치료 후에 어떻게 움직이셔야 하는지를 제가 반드시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정리하면

힘으로 꺾기 무르게 하기
즉시 느낌 시원함, 소리 서서히 편해짐
조직의 성질 그대로 바뀜
몸의 반응 방어함 받아들임
지속성 되돌아가기 쉬움 유지되기 쉬움

풀린 것과 바뀐 것은 다릅니다. 치료받을 때만 편했다면, 아직 성질이 바뀌지 않았거나 압력을 만든 자리를 못 찾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변성이라는 성질 자체는 물리학과 재료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사람의 결합조직 치료에 적용하는 방식은, 제가 임상과 공부를 통해 세운 관점입니다. 확립된 사실과 제 해석을 저는 구분해서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굳음이 이렇게 풀리지는 않습니다. 실제 구조 손상이 있거나, 수술이 필요한 상태도 있습니다. 그런 신호가 보이면 검사를 먼저 권해 드립니다.

다만 여러 번 풀었는데 자꾸 되돌아온다면, 그것은 몸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아직 사슬의 앞을 못 찾았거나, 성질이 바뀌지 않았을 뿐입니다. 되돌아오지 않는 쪽으로 함께 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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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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