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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2026년 7월 10일

보약은 좋은 것을 채워 넣는 약일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기운이 없어서 보약 좀 지으려고요."

가을이 되면 이런 말씀으로 오시는 분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대개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좋은 걸로 넣어 주세요."

저는 이 말씀에 늘 잠시 머뭇거립니다. 무성의해서가 아닙니다. "좋은 것을 넣는다"는 표현이 보약을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넣는 것과 쓰이는 것은 다릅니다

간단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기운이 없는 것은 재료가 없어서일까요, 재료를 쓰지 못해서일까요?

잘 드시는데도 기운이 없는 분이 많습니다. 오히려 살은 찌는데 늘 피곤한 분도 계십니다. 이런 분께 좋은 재료를 더 넣는 것이 답이 될까요.

발전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름이 떨어져 멈춘 발전기에는 기름을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기름은 가득한데 발전기가 돌지 않는다면, 기름을 더 붓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흘러넘칠 뿐입니다.

몸도 그렇습니다.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 무너져 있으면, 재료를 넣어도 에너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가지를 나누어 봅니다

기운이 없다고 오시는 분을 볼 때, 저는 어디가 막혀 있는지부터 찾습니다.

첫째, 재료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
먹어도 흡수하지 못합니다. 장이 오래 흥분해 있으면 받아들이는 일을 그만둡니다. 이런 분께는 좋은 것을 아무리 넣어도 그대로 나갑니다. 먼저 장이 안심해야 합니다.

둘째, 만들지 못하는 경우.
재료는 들어왔는데 에너지로 바뀌지 않습니다. 세포 안의 발전 과정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런 분께 필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발전기를 다시 돌리는 일입니다.

셋째, 치우지 못하는 경우.
가장 자주 놓치는 자리입니다. 만들어진 것을 쓰고 나면 찌꺼기가 남습니다. 그 찌꺼기가 세포 주변에 고여 있으면, 세포는 새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분께는 넣는 일이 아니라 비우는 일이 먼저입니다.

보약은 채우는 약이 아니라, 어디가 막혔는지 찾아 뚫는 약입니다.

채우는 약과 비우는 약

옛 의서에도 이 구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렇게 읽습니다.

무엇을 하는가 언제 쓰는가
채우는 쪽 세포가 다시 일하도록 밀어 준다 발전기가 힘을 잃었을 때
비우는 쪽 세포 주변을 정돈해 준다 찌꺼기가 고여 있을 때

두 가지를 거꾸로 쓰면 어떻게 될까요.

고여 있는 사람에게 채우는 약을 쓰면 더 무겁고 답답해집니다. 붓고, 소화가 안 되고, 오히려 처집니다. "보약 먹고 더 힘들었다"는 말씀은 대개 여기서 나옵니다.

비어 있는 사람에게 비우는 약을 쓰면 기운이 더 빠집니다. 몸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약은 아무 때나 좋은 약이 아닙니다. 지금 이 사람의 몸이 어느 쪽인지 읽어야 합니다.

감기 걸렸을 때 보약을 안 쓰는 이유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감기에는 보약이 안 좋다면서요?"

몸이 감염과 싸우는 중에는 면역이 켜져 있어야 합니다. 이때 몸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개입하면, 싸움이 늘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보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불이 났을 때 필요한 것은 소화기이지 영양제가 아닙니다. 불을 끄고 나면 그때 회복을 도우면 됩니다.

그러면 언제가 좋은가

몸이 지금 무언가와 싸우고 있지 않을 때.
급성 염증, 감염, 열이 있는 동안에는 미룹니다.

무너진 순서를 확인한 뒤에.
흡수가 문제인지, 대사가 문제인지, 순환이 문제인지 알아야 어디부터 손댈지 정할 수 있습니다.

드시는 약을 확인한 뒤에.
앞선 글에서 말씀드렸듯 감초와 이뇨제가 만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보약도 예외가 아닙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짓는 보약을 저는 권하지 않습니다. 몸이 준비되었는지가 계절보다 중요합니다.

"좋은 걸로 넣어 주세요"에 대한 대답

값비싼 약재를 많이 넣으면 좋은 보약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약은 넣은 것이 쓰이는 약입니다.

아무리 귀한 재료도 흡수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세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부담만 됩니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들어가야 몸이 씁니다.

그래서 저는 때로 적게 쓰는 처방을 드립니다. 실망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뭔가 대단한 것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몸을 대신하는 약이 아니라 몸을 깨우는 약이라면, 필요한 것은 알아챌 만큼의 신호이지 압도할 만큼의 양이 아닙니다.

이럴 때는 보약이 아니라 검사입니다

기운이 없는 것을 "체력이 떨어져서"로만 보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체중이 뚜렷하게 줄고 있다
  • 밤에 식은땀을 흘린다
  • 열이 오르내린다
  • 자고 나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가 몇 달째 이어진다
  • 숨이 차고 얼굴이 창백하다
  • 목이나 겨드랑이에 멍울이 만져진다

빈혈, 갑상선, 당뇨, 감염, 드물게는 종양이 이런 얼굴로 옵니다. 보약을 드시며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런 신호가 보이면 약을 짓기 전에 검사를 권합니다. 그것이 순서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흡수와 대사, 그리고 세포 주변 환경이 회복에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어떤 약재가 이 가운데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아직 사람에게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실험실에서 관찰된 것을 사람의 몸으로 그대로 옮기는 데는 늘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채우는 쪽과 비우는 쪽"이라는 구분도, 오랜 임상 관찰을 현대의 언어로 다시 읽은 것입니다. 검증된 분류라기보다 제가 환자를 이해하는 틀에 가깝습니다.


"보약 좀 지어 주세요"라는 말씀에 저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기운이 없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부터 찾아보겠습니다."

무엇을 넣을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어디가 막혔는지 모르는 채로 좋은 것을 넣는 일은, 막힌 관에 물을 붓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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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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