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은 오래 먹어야 듣는다는 말
목차
"한약은 원래 오래 먹어야 듣는 거죠?"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그리고 이 오해가 두 가지 손해를 낳습니다.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 할 약을 두고 "아직 때가 안 됐다"며 기다리는 손해.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회복을 두고 "이 약은 안 듣는다"며 그만두는 손해.
저는 한약을 빠른 약과 느린 약으로 나누어 설명드립니다.
그날 저녁에 반응이 오는 약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어떤 한약은 놀랄 만큼 빨리 반응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이상한 일입니다. 한약재의 성분 상당수는 그대로 흡수되지 않습니다. 장에 사는 미생물이 먼저 손을 대어 활성 형태로 바꾸고, 간을 거치며 한 번 더 변합니다. 시간이 걸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빠를까요.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기 전에, 닿는 자리에서 먼저 일하기 때문입니다.
입에서 위, 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 자체가 거대한 표면입니다. 이 표면에는 신경 끝이 촘촘하고, 면역 세포가 대기하고 있고, 자극을 감지하는 장치들이 빽빽합니다.
약이 이 표면에 닿는 순간, 흡수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신호가 시작됩니다. 과민하게 흥분해 있던 세포들이 물질을 쏟아 내는 것을 그 자리에서 막습니다. 신경 끝이 그 자리에서 자극을 받아 뇌로 신호를 보냅니다.
온몸을 거치지 않으니 빠릅니다.
그래서 이런 증상은 빨리 반응합니다
- 갑자기 조여드는 경련성 통증
- 배가 부글거리고 당기는 느낌
- 목이 막히는 것 같은 이물감
- 급하게 치미는 구역감
이런 것들은 몸이 과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과한 반응을 눅이는 일은 빠를 수 있습니다. 며칠 안에 달라지지 않으면 저는 처방을 다시 봅니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
반대로 아무리 좋은 약도 시간을 건너뛸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직의 성질이 변한 경우입니다.
오래 눌리고 부어 있던 조직은 물을 머금은 채 굳습니다. 밀도가 높아지고 무거워집니다. 이 조직이 원래 성질로 돌아가려면 재료가 들어오고, 낡은 것이 나가고, 세포가 다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공사입니다. 신호 하나로 되지 않습니다.
흡수가 무너진 경우도 그렇습니다.
장이 오래 받아들이기를 그만두었다면, 면역이 가라앉고 → 흡수가 돌아오고 →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 그제야 손발까지 피가 갑니다. 이 순서를 건너뛸 수 없습니다.
신경이 예민해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증이 오래되면 신호를 전달하는 회로 자체가 증폭 상태로 바뀝니다. 회로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고가 난 뒤 한동안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 대략 언제쯤 |
|---|---|
| 과한 반응을 눅이는 것 | 며칠 안에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 흡수와 대사를 되살리는 것 | 몇 주가 필요합니다 |
| 굳은 조직의 성질을 바꾸는 것 | 몇 달이 걸립니다 |
| 예민해진 신경 회로를 되돌리는 것 | 몇 달, 때로는 그 이상 |
같은 사람에게 이 네 가지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증상은 일찍 편해지고, 어떤 증상은 나중에 편해집니다.
이것이 "좋아지다가 그대로다"라고 느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빠른 부분이 먼저 좋아지고, 느린 부분이 아직 진행 중인 것입니다.
그래서 첫 진료에서 제가 하는 말
저는 약을 지어 드리며 이렇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증상은 일주일 안에 달라질 겁니다. 안 달라지면 제가 잘못 본 것이니 알려 주십시오."
"이 증상은 두 달쯤 걸립니다. 한 달째에 별 변화가 없어도 놀라지 마십시오."
시간표를 미리 말씀드리지 않으면 두 가지 일이 생깁니다. 빨리 반응해야 할 약이 안 들어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고, 시간이 필요한 회복인데 한 달 만에 포기하게 됩니다.
"기다려 보세요"는 진료가 아닙니다. 무엇을, 왜, 언제까지 기다리는지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기다리면 안 되는 신호
한약을 드시는 중에 다음이 나타나면 기다리지 마시고 연락 주십시오.
- 두드러기, 가려움, 얼굴이나 입술의 부기
- 숨이 차거나 목이 조이는 느낌
- 심한 복통, 구토, 검은 변
-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변함
- 가슴 두근거림, 맥이 고르지 않음
- 소변량이 뚜렷하게 줄어듦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좋아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약을 멈추십시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한약의 성분이 장내 미생물의 대사를 거쳐 활성화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화관 표면에 신경과 면역 조직이 밀집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래서 한약이 그 자리에서 빠르게 작용한다"는 제 설명은 아직 가설의 성격을 갖습니다. 실험실에서 뒷받침되는 근거가 있지만, 사람에게서 이 경로가 얼마나 크게 작동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임상에서 빠른 반응과 느린 반응이 분명히 갈린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제 해석입니다.
한약이 느린 약이라는 말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느린 것은 약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약은 신호를 건넬 뿐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은 몸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무엇을 되돌리려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