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을 숫자로 볼 수 있을까 — 심박변이도 이야기
손목에 차는 기기가 "스트레스 지수" 같은 숫자를 알려 줍니다. 그 숫자를 캡쳐해 오셔서 "이게 낮게 나오는데 괜찮은 건가요"라고 물으시는 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저도 진료실에서 자율신경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실 만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숫자의 정체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심장은 사실 규칙적으로 뛰지 않습니다
건강한 심장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뛰지 않습니다.
맥박이 분당 60회라고 해서 정확히 1초에 한 번씩 뛰는 것이 아닙니다. 0.98초, 1.03초, 0.95초… 박동과 박동 사이의 간격이 계속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이 흔들림의 폭을 재는 것이 심박변이도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뒤집어 생각하십니다. 이 흔들림은 고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몸에는 긴장 쪽으로 미는 신경과 이완 쪽으로 미는 신경이 함께 있습니다. 이 둘이 매 순간 서로 밀고 당기면서 심장 박동을 조율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와 내쉴 때 심박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조율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흔들림이 줄었다는 것은 조율의 폭이 좁아졌다는 뜻입니다.
이 지표를 어떻게 재고 읽을지는 1996년에 유럽심장학회 등이 만든 기준 문서가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유행이 아니라 오래 연구되어 온 지표입니다.
숨은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통로입니다
이 지표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지점이 있습니다. 숨을 천천히 쉬면 이 값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몇 주간 느린 호흡을 훈련한 쪽의 심박변이도 지표가 올라갔습니다. 분당 열 번 아래로 느리게 숨을 쉬면 자율신경 쪽 지표가 달라진다는 연구들을 모은 정리도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호흡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건드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율신경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심장 박동은 마음대로 못 바꾸지만, 숨은 지금 이 순간 늦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숨의 변화가 심장의 조율 폭에 실제로 나타납니다.
진료실에서 숨을 자주 물어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얕은 호흡이 오래되면 증상이 여러 갈래로 흩어집니다. (숨이 얕아지면 증상이 흩어집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잘 흔들립니다
한 가지는 알고 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심박변이도는 재는 조건에 따라 값이 쉽게 달라집니다. 앉아서 쟀는지 누워서 쟀는지만 달라도 값이 다르게 나옵니다. 그때의 호흡 속도, 나이, 드시는 약도 값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내 숫자가 낮게 나왔다"고 오늘 몸이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어제보다 조금 얕게 숨을 쉬었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숫자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숫자를 아예 안 보지도, 숫자만 보지도 않습니다.
같은 사람 안에서의 흐름으로 봅니다. 남과 비교하는 대신, 같은 조건에서 잰 그분의 지난달과 이번 달을 봅니다. 값이 흔들리기 쉬운 지표일수록 한 번의 측정보다 방향이 낫습니다.
숫자보다 이야기를 먼저 듣습니다. 잠들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침에 일어날 때 어떤지, 긴장하면 어디가 먼저 반응하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숫자 하나보다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검사가 정상이라는 말의 뜻)
숫자가 좋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제가 보려는 것은 지표가 아니라 그분의 하루입니다. 잠이 편해지고, 아침이 덜 무겁고, 긴장이 오래 남지 않는 것. (잠은 재우는 것이 아니라 넘어가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나 의식을 잃을 뻔한 일, 쉬는데도 맥이 심하게 불규칙한 것 — 이런 건 손목의 숫자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심장 검사가 먼저입니다.
긴장을 숫자로 볼 수 있을까요.
부분적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심장의 흔들림에 자율신경의 흔적이 남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재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율신경은 막연한 말이 아니라 이렇게 측정되는 대상입니다.
다만 그 숫자가 그분을 다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를 참고로 쓰고, 판단은 그분의 이야기와 몸을 보고 합니다.
참고한 자료
- 심박변이도의 측정과 해석에 관한 국제 기준 문서 — Circulation, 1996
- 느린 호흡 훈련 후 심박변이도 지표가 올라간 무작위 대조 연구 — Cureus, 2022
- 분당 10회 미만의 느린 호흡이 자율신경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모은 정리 —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2018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