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이 경계 수치라면 — 흔들림부터 봅니다
"당뇨는 아닌데 경계래요. 관리하라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건강검진 뒤에 이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약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괜찮다는 것도 아닌 자리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좀 다르게 봅니다.
몸은 높은 것에 어느 정도 적응합니다
이게 제가 진료실에서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 몸은 높거나 낮은 것에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합니다. 혈당이 조금 높아도 몸은 그 높이에 맞춰 기준선을 다시 잡습니다. 그래서 수치가 꽤 높은데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높은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래 높으면 혈관이 상합니다. 그건 그것대로 봐야 하고, 그래서 검진을 하는 겁니다.
다만 높은 것은 당장은 잘 안 느껴집니다. 혈관이 상하는 건 몇 년에 걸쳐 조용히 일어나니까요.
지금 힘드신 것 — 그건 대개 흔들림 쪽입니다. 오르내리는 폭이 커지면 그건 그날 바로 느껴집니다.
같은 평균이어도 완만하게 흐르는 몸과 크게 출렁이는 몸은 다릅니다. 평균만 보면 둘이 같아 보이는데, 사는 사람은 전혀 다르게 느낍니다.
왜 흔들림은 바로 느껴질까
신경이 변화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방에서는 냉장고 소리도 크게 들리는데, 시끄러운 데서는 안 들립니다. 신경이 재는 것에는 크기만이 아니라 달라지는 폭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높이는 조용히 지나가고, 흔들림은 소리를 냅니다.
혈당도 그렇습니다. 뚝 떨어지는 그 순간, 몸은 그것을 위험으로 읽습니다. 그러면 끌어올리는 쪽이 급하게 일합니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고, 갑자기 단 것이 당기는 그 순간이 그겁니다.
그리고 특히 기능이 떨어지는 쪽으로 갑자기 흔들리면, 몸은 그걸 걱정해서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떨어지는 것이 몸에게는 더 급한 일이니까요.
식후에 졸리고, 몇 시간 뒤에 허기가 몰려오고, 그때 또 급하게 먹게 되는 — 그 하루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식후 졸림과 만성피로, 대사가 보내는 신호)
그래서 대사증후군은 수치보다 먼저 시작합니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입니다.
흔들림이 커지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받아 줄 그릇이 작아져 있어야 합니다.
밥을 먹으면 당이 들어옵니다. 그걸 근육이 받아 주면 완만하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근육이 줄어 있으면 받아 줄 데가 없어 그대로 튑니다. 소화가 시원찮아 들쭉날쭉 넘어가면 들어오는 속도부터 고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사증후군이 수치가 오르기 한참 전, 기능이 떨어지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나이가 들고, 근육이 약해지고, 소화가 예전 같지 않아지는 — 그 무렵부터입니다. 수치는 한참 뒤에 나타납니다. 검진에서 경계라는 말을 들으셨다면, 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경계 수치는 아직 약으로 누를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 — 저는 흔들림을 줄이는 쪽을 먼저 봅니다. 그러려면 받아 줄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근육이 첫 번째입니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라 걷는 것부터입니다. 먹은 당을 받아 주는 그릇 중에 근육이 제일 큽니다.
소화가 두 번째입니다. 들어오는 속도가 고르면 나오는 곡선도 완만해집니다.
잠이 세 번째입니다. 잠이 모자라면 다음 날 하루 종일 곡선이 거칩니다.
수치도 봅니다. 다만 수치만 붙잡고 씨름하는 것보다, 그 수치를 흔드는 조건을 함께 손보는 편이 낫습니다.
경계라는 말을 들으셨다면,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아직 흔들림만 있고 굳어진 것은 없다는 뜻이니까요. 이 자리가 가장 손대기 쉬운 자리입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