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가 오래되면 왜 기운까지 빠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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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는 며칠이면 낫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몇 달째입니다."
오래된 설사로 오신 분들은 대개 설사 이야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기운이 없고, 손발이 차고, 조금만 걸어도 지치고, 살이 빠졌다고 하십니다. 검사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고 들으셨습니다.
저는 이 분들을 볼 때 설사를 병으로 보지 않습니다. 설사를 결과로 봅니다.
장이 하는 일을 그만두었을 때
장의 본래 일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음식에서 영양과 물을 뽑아 몸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런데 장 점막에는 또 하나의 일이 있습니다. 몸에서 가장 큰 면역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낯선 물질이 들어오는 곳이니, 지키는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잘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장의 면역이 오래 흥분해 있으면, 장은 받아들이는 일을 뒤로 미룹니다. 위험한 것을 씻어 내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물을 빨아들이는 대신 내보내고, 벽의 이음새가 헐거워지고, 붙잡아야 할 것들이 빠져나갑니다.
설사는 장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장이 흡수를 포기하고 방어를 택한 상태입니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들
여기서 멈추면 며칠 설사하고 낫습니다. 문제는 이 상태가 오래 이어질 때입니다.
장 점막의 면역이 오래 흥분한다
↓
흡수를 멈추고 내보내기 시작한다 ← 여기까지가 '설사'
↓
영양과 물, 전해질이 계속 빠져나간다
↓
에너지를 만들 재료가 모자란다 ← 기운이 없다
↓
몸이 중요한 곳부터 챙긴다
(심장·뇌를 지키고 손발은 뒤로) ← 손발이 차다
↓
버티느라 부신이 소모된다 ← 아침에 못 일어난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손발이 찬 것은 원인이 아니라 다섯 번째 결과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여기서 "몸이 차니까 따뜻한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몸을 덥히는 것들을 찾아 드십니다. 틀린 방향은 아닙니다만, 가장 위에서 무너진 것을 그대로 두면 아래는 다시 무너집니다.
그래서 치료의 순서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순서를 지켜 접근합니다.
첫째, 흥분한 장의 면역을 가라앉힙니다.
장이 계속 경계 태세인 한 흡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먼저 장이 안심해야 합니다.
둘째, 흡수를 되살립니다.
면역이 가라앉으면 장은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먹는 것이 몸에 남습니다.
셋째, 에너지 대사를 돕습니다.
재료가 들어와야 에너지가 만들어집니다. 순서를 건너뛰면 아무리 좋은 것을 넣어도 새어 나갑니다.
넷째, 그제야 말초 순환입니다.
손발이 따뜻해지는 것은 마지막입니다. 중심이 회복되어야 몸이 손끝까지 피를 보낼 여유가 생깁니다.
손발이 찬 것을 먼저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몸이 내린 합리적인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위태로운데 손끝에 피를 보내는 몸이 오히려 위험합니다.
여기에 압력의 언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 글을 오래 읽으신 분은 제가 몸을 압력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에는 압력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병을 하나의 언어로 설명하려 들면, 그 순간 병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몸의 환경을 이루는 축은 여럿입니다. 물리적인 힘, 시간, 화학, 대사, 면역, 신경, 순환, 호르몬. 병마다 먼저 무너진 축이 다릅니다. 이 병에서 먼저 무너진 것은 면역과 흡수였습니다. 압력은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어느 축이 먼저 무너졌는지 읽는 것 — 그것이 진료입니다.
오래된 설사에서 제가 겁내는 것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래된 설사는 장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이 계속 빠져나가면 몸속을 도는 피의 양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신장으로 들어가는 피가 줄어듭니다. 신장은 피의 양에 민감한 기관입니다. 여기에 장에서 흥분한 면역이 만든 물질까지 신장에 걸리면, 신장에 부담이 쌓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된 설사 환자분께 소변 검사와 신장 기능 검사를 권합니다. 한약을 쓰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입니다.
병원에 먼저 가셔야 하는 경우
다음의 경우에는 한의원이 아니라 병원부터 가십시오. 이것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 설사에 피가 섞이거나 검은색이다
- 열이 나면서 설사가 계속된다
- 밤에도 설사 때문에 잠에서 깬다
- 체중이 뚜렷하게 줄었다
- 소변이 눈에 띄게 줄었거나 색이 진하다
- 어지럽고 일어설 때 눈앞이 캄캄하다
염증성 장질환, 감염, 종양처럼 먼저 가려야 할 병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려내지 않고 한약부터 쓰는 것은 위험합니다.
특히 물을 많이 잃은 상태에서 함부로 몸을 덥히거나 순환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오히려 몸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른 논에 물을 급히 대면 흙이 쓸려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정직하게 남겨 두는 것
지금까지 말씀드린 순서 — 면역, 흡수, 대사, 순환 — 는 제가 임상에서 관찰한 것을 설명해 주는 틀입니다.
장 점막의 면역이 흥분하면 흡수가 떨어진다는 것, 흡수가 무너지면 에너지 대사가 흔들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생리입니다. 다만 한약이 이 사슬의 어느 고리를 얼마나 되돌리는지는 아직 사람에게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실험실과 동물 연구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 틀로 도움을 받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정된 사실처럼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한약이 도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말씀드리는 것, 그것이 제가 지키려는 선입니다.
오래 설사하신 분들이 진료실에서 자주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기운이 없는 건 나이 탓인 줄 알았어요."
아닐 수 있습니다.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되돌릴 자리가 있습니다.